전도부인의 유래
전도부인(Bible Woman)은 직역하자면, ‘성경을 담당하는 여자’다. 그러나 전도부인으로 지칭한 것을 볼 때에 선교초기 전도부인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성서공회의 자료는, Bible Woman은 여자권서를 의미하며, 선교회나 교회 측의 자료는 여전도인, 여전도사를 의미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것은 한국교회 형성과정에서 전도부인의 역할이 성서를 판매하며 전도활동을 벌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성결교단의 경우 1909년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한 박기반을 첫 전도부인으로 세운 이래 창립 때부터 1945년까지 지속적으로 여교역자의 직분 상 공식 명칭을 ‘전도부인’으로 사용했다. 전도부인이 되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인정하고 있는 전도부인 양성기관을 통한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한국성결교단 전도부인의 양성기관은 ‘동경성서학원, 복음전도관, 경성성서학원, 타교단 및 기타 양성기관’ 등이다).
전도부인의 강점, ‘침투와 기도’
전도부인들은 적극적인 방법으로서의 직접 전도를 선택했다. 이 모습은 곧 ‘적의 기지’를 ‘침투’하는 모습과 같다. 틈이 보이는 곳이라면,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일명 ‘침투’ 전도다. 이 모습은 그녀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동양선교회의 방향과 동일했다. 동양선교회는 기존 교파의 선교 방법에 반대했다. 오직 영혼 구원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는 직접 전도를 우선했다.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복음을 들고 침투했다. 가장 활발했던 직접 전도 중 하나는 축호전도다. 이는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행하는 전도활동이다. 1915년 11월 「동양선교사의 표준」에 의하면 김천전도관의 전도부인인 허순성은 신자가정 30호와 불신자가정 50호를 방문했다. 그리고 1917년 10월의 보고에 의하면, 손은숙은 1917년 7월 한 달간 250여 가정을 방문했는데 80가정은 불신자 가정이었다고 기록한다. 이처럼 전도부인들은 축호전도와 심방을 통해 문제가 있는 신자들 혹은 새 신자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며 신앙을 올바로 정립하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아현전도관의 전도부인이었던 이유겸은 축호전도를 통해서 여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성경을 읽도록 권면했다. 1915년 1월에는 무려 75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중에 15~16명이 관심을 보였고, 8명이 예수를 믿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중 3명은 주일아침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은산에서 사역한 손경애 역시 집집마다 방문하여 여인들을 대상으로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총 18명의 중생자를 얻었다. 그 중 무려 14명은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게 되었다. 14명 중 한 여인은 아편으로 자살을 계획하던 여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이 그 여인의 상처를 싸매었고, 극적인 구조를 받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녀는 자신의 친척과 이웃 뿐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처럼 살아가는 여인들을 지속적으로 찾아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되었다.
아울러 전도부인들은 어느 곳에서 사역을 하든지 반드시 ‘기도회’를 열어 복음전도의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당시 한국 여성들의 처지는 실로 궁벽하고 남루했다.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구한말의 여성들은 이름도 없는 존재였으며 집안에서는 중노동과 매질에 시달리는 아내들이 많았다. 그러한 여성들을 유일하게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이 전도부인이었다. 그들을 찾아가 돌볼 뿐 아니라 필요를 직접 살피고 채우기 시작했다. 때론 차분한 호기심으로 열린 질문을 통해 개인의 대화와 간증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름답고 놀라운 환대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바로 기도였다. 기도는 그들에게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 결정적인 시간이었다.
또한 만만치 않은 핍박 속에서 예수를 더욱 의지하는 필사적인 노력의 증거였다. 그녀들의 기도는 맑은 새벽의 시작을 알리는 ‘청신기도회’라 불렸고 오늘날 새벽기도회의 전신이 되었다.
현대적 적용
강력한 세속화는 오늘날 수많은 교회의 힘을 빼앗고 있다. 그러나 전도부인이 보여준 ‘강력한 기도’와 아파하는 영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침투’했던 구령의 열정이 재현될 수 있다면 전도의 현장은 반드시 새로워 질 것이다.
변화무쌍한 세상과 변하지 않는 복음, 이 둘 사이에는 늘 전도자가 있었다. 그들은 복음과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다. 전도부인이 그와 같았다. 비록 이름도 빛도 없이 조용히 사라졌지만, 예수를 전하기 위해 ‘엎드리고, 싸우고, 전하며, 찾았던’ 전도부인의 흔적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