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bereshit bara ellohim).”는 말씀(창1:1)은 관찰 기록이나 정보 설명이 아닌 신앙고백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서의 첫 책 창세기의 첫 문장이 자음 베드(ב)로 시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나가는데 첫 문자의 오른쪽과 위, 아래가 막혀 있다. 창조 이전, 위로 하늘, 발아래에 대해서도 묻지 말라. 열린 왼쪽, 오직 미래를 향하여 나가라.
▨… 태초라는 시작에서 비롯된 물리학적 피조물인 시간에 하나님을 가두어 놓으려는 오만한 논쟁을 멈춰야 한다. 창조의 시간과 날짜를 묻기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과 피조물을 그분의 뜻에 따라 잘 관리하고 보전(保全)해야 하는 만물의 청지기로서 개인은 탐욕으로 인한 환경의 파괴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소비와 나눔을 실천하고 교회와 신학자는 생태와 공존의 신학과 윤리를 고민해야만 정치적인 대립과 나라들의 전쟁이 멈추지 않을까.
▨… 하나님에 대한 형이상학적 서술과 논쟁을 멈추고 그분의 피조물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걸작품(Poiema 엡 2:10)인 사람을 보면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을 누구보다 가장 깊이 경험한 요한은, 비교 의식, 열등감, 분노와 미움으로 형제를 살해한 가인처럼 하지 말라(요일 3:12)며 하나님은 사랑이다(요일 4:8) 라고 선언하였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묻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나는 나다(여호와)”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 천국이나 극락 등의 사후 세계를 경험하였다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 또는 토목공사의 굴착 현장에서 지하 세계로부터 들려오는 지옥의 울부짖음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교도소 사역에 평생을 바친 이의 “사형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천국과 지옥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라는 고백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 열린 미래를 향하여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닫는 체험이 소명이며 그 부르심에의 순명이 사명이다. 세계 윤리 없이 생존은 없다. 종교 평화 없이 세계 평화도 없다(한스 큉, 『세계윤리구상』). 과학을 이단이라 하는 종교, 종교를 바보라 하는 과학의 대립에서 벗어나라.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그제야 보이는 것이 신앙의 지혜,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으니 더불어 사는 길이 생존이라 함이 합리적 과학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