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원 예배를 드리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중 하나가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예배시간을 기억해서 오십니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고, 성별이 달라도 예배 시간엔 하나가 됩니다. 예배를 특별히 사모하는 분이 계십니다. 얼마나 깔끔하고 단정하신지! 늘 한결같이 정갈하십니다. 예배에 대한 진심을 매번 봅니다. 깨끗한 옷매무새, 한 올도 흩날리지 않게 빗질한 단정한 머리, 한 손에 들고 오시는 성경책 등에서. 어려서부터 할머니께 신앙훈련을 받아서 그렇다 하십니다.
찬송 부를 땐 참으로 열정적입니다. 또한 화음을 얼마나 잘 넣으시는지 모릅니다. 젊었을 때 성가대 알토 파트를 맡으셨다 합니다. 그래서 찬송 부를 때 알토가 훨씬 더 편하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예배를 사모하시던 분께서 어느 날부터 예배 때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한두 주 못 오시면 무슨 일이 있으신가 보다, 의사를 만나시나 보다, 가족이 오셨나 보다 등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 서너 주를 넘으면 액티비티 디렉터에게 슬쩍 묻습니다. 어디 아프시지는 않은지, 혹 병원에 가시지는 않았는지, 특별히 기도해야 하는 것은 없는지 등을 확인합니다. 돌아온 대답은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였습니다.
몇 주 후 우연히 복도에서 뵈었습니다. 평소에는 금방 알아보셨는데 한참 머릿속에서 생각합니다. ‘누구지?’하는 표정과 함께. 순간 ‘치매가 심해졌구나!’ 생각했습니다. 치매가 심해지면 많은 것을 잊습니다. 머릿속이 하얀 상태.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느 날 예배를 준비하는데 찾아오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주먹인사를 나누고 표정을 보니 바뀌었습니다. 다시 얼굴이 환해지셨고 옷매무새가 깔끔해지셨습니다. 치매가 잠시 마실 나간 듯 보였습니다. 두 손을 잡고 진지하게 한 마디 건네십니다. ‘치매로 예배를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래도 이해해 주세요.’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마디. ‘Don’t forget me’(나를 잊지 말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찡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리곤 눈물이 앞을 가려 그분의 얼굴이 흐릿해졌습니다. 그 표현은 한 마디 언어를 넘은 간절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정신이 조금 맑아져 이런 말을 할 수 있지만, 정신이 흐리면 모든 것을 잊으니 (예배조차도) 그런 나를 이해하고 기억해 달라는 겁니다. 생각이 예까지 미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감당키 힘든 슬픔이 몰려옵니다.
‘Don’t forget me’이 한마디가 마음을 휘저을 때. 조용히 휠체어를 뒤로 빼며 남기는 마지막 말씀. “Remember my name, please!” 치매로 자신은 남을 잊을 수 있지만, 자신이 잊히는 걸 두려워한 겁니다.
천천히 떠나는 그 분 손을 꼭 잡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머님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기억하십니다” 그 말을 듣고 환한 얼굴 남겨주고 가십니다.
그 후 그분은 예배 때 많이 못 오셨습니다. 그냥 복도를 배회하셨습니다.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예배 장면을 보면서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미리 하신 말씀이 없었다면 오해했을 겁니다.
그러다가도 정신이 맑아지면 예배에 오십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정적으로 찬송가 부르시고, ‘아멘’ 하시며, 하나님을 경배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이 치매 때문입니다.
치매는 인생의 원수입니다. 사람을 아주 피폐하게 만듭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망가뜨립니다.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고, 혼자의 세상에 가둬놓습니다.
때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양로원에서 적응 잘하며 잘 지내시는 분들을 보면 살짝 치매환자가 많습니다. 맑은 정신으론 양로원 생활이 힘들 수 있지만, 정신이 뿌여면 ‘양로원 생활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라고 받아드립니다.
그제도 그분과 함께 예배드리고 왔습니다. 비록 치매로 힘들어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감사하십니다. 그분을 통해 언젠가의 모습을 봅니다. 치매로 헤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