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설교, 곧 성경의 메시지와 설교의 메시지가 일치하는 설교를 하기 위해 설교자는 먼저 본문과 깊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기초적인 작업은 본문을 문법적으로 읽으며 평이한 의미를 파악하고, 역사적 문학적 맥락 속에서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설교자는 꼼꼼한 관찰에 기반하여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본문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본문 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설교의 청중들을 본문과의 가상의 대화에 초대하여 본문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피고, 마지막으로 신학적 사유를 통해 본문 속에서 일하시며 그와 같이 현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의 말씀을 잉크로 만든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이러한 본문과 깊은 대화를 통과한 다음 설교자가 할 일은 설교 주제를 설정하고 주제문을 작성하는 것이다. 본문 연구가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듣는 작업이라면 주제 잡기는 본문과의 대화를 기초로 무엇을 청중에게 말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은 설교는 풍성한 성경강의는 될 수 있어도 분명한 복음의 선포가 될 수는 없다. 

본문을 깊이 연구하며 그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수많은 얘깃거리들을 캐내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나 설교자의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캐낸 보석들 중 청중에게 전달할 핵심 주제를 정해야 한다. 그 후에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어떻게 수사적으로 설교를 구성할지를 구상할 수 있고, 그러한 설교의 흐름 혹은 구조 속에 어떤 언어와 이야기들을 통해 주제를 표현할지 고민하고 다듬어 간다. 이것은 마치 보석 세공사가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좋은 원석들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 중 작품의 중심에서 빛날 보석을 고르고 그것을 중심으로 다른 재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한 것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설교의 주제(theme)는 설교의 소재 혹은 얘깃거리라기보다는 중심 사상이고 초점이다. 주제는 무엇을 핵심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지를 밝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논지 혹은 요지, 요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토마스 롱은 “주제란 설교의 중심 되는, 설교를 통제하는, 설교를 통합하는 사상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며 “전 설교는 이 초점에 대한 설명”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설교의 주제(theme)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말하는 이슈나 무엇에 관한 것이냐를 말하는 제목 혹은 화제, 논제(topic)와 구분된다. 

누가복음 10장 25~37절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설교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본문에서 이슈는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인가?”하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와 관련하여 본문이 말하는 것은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자를 구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화제 혹은 제목(topic)이다. 이것은 주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비유가 전달하는 사실관계는 진술하고 있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제는 사실관계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이면에 숨겨진 의도 혹은 사상과 관련이 있다. 

예수는 강도 만난 유대인을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닌 사마리아인이 구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구원이 혈통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유대인들의 믿음을 흔들었고 그들을 구원하는 메시야는 사실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사마리아인처럼 메시야가 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긍휼의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전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하나님께서는 강도만난 자를 구원자의 혈통, 신분이나 지위를 가진 이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를 긍휼히 볼 수 있는 사람을 통해 구원하신다”라는 주제문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것이 본문의 핵심사상 혹은 본문의 의도이다. 설교의 주제문은 이것을 현재 청중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로 전환시킴으로서 구성된다. 즉, 본문의 핵심 사상을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자를 통해 죽어가는 자(우리)를 살리신다”는 메시지로 전환될 수 있다. 이렇게 성경적 설교는 본문의 중심 사상을 설교의 중심 사상으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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