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착함을 추구하는 본성, 곧 도덕성이 있다. 그래서 혹자는 종교의 진리를 ‘밝음’과 ‘바름’ 그리고 ‘착함’의 차원에서 정의하기도 한다. 종교를 도덕적 테두리 안에 두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들은 예수를 구원자가 아닌 윤리 교사나 박애주의자로 인식한다. 박애주의는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상한 가치관이나 고차원의 도덕일 뿐 신앙의 핵심도 진리도 아니다. 

기독교는 가치관이나 도덕이 아니라 거듭나는 것이다. 그 거듭남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십자가의 예수를 믿고 영접함으로써만 가능하다. 혹자는 그 차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도덕의 길이 개선과 수선의 길이라면, 신앙의 길은 거듭남의 길이다. 도덕의 길이 자신을 고치고 수선하는 길이라면, 신앙의 길은 자아의 파산을 인정하는 길이다.”(장경철. 믿는다는 것의 행복 . 210-211.). 거듭남의 신비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그것은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다. 도덕의 길이 육(Flesh)이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면, 거듭남은 영(the Spirit)의 길인 것이다(요 3:6). “참된 기독교 신앙이란 영혼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기독교의 위기는 여기에 있다. 주님이 제시하고 보여주신 거듭남의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아니면 예수의 대본을 입맛에 맞게 각색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거듭남의 은혜를 구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는다. 거듭남의 은혜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거듭남은 인생의 변곡점이 된다. 도덕가의 길을 버리고 신앙인의 길을 걸어가게 한다. 교회의 역사 속에는 그런 유산이 매우 풍부하게 남아 있다. 18세기 영국의 부흥 운동에  쓰임 받았던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회심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존 웨슬리는 자신의 인생에 찾아왔던 변곡점의 사건을 이렇게 기록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있는 어느 모임에 갔다. 거기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었다. 저녁 8시 45분 경, 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 마음 속에서 역사하사 일으키시는 변화를 말할 때에, 내 마음이 이상하게도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이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함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주께서 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제거하셨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1738년 5월 24일자 웨슬리의 <일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시간은 저녁 8시 45분경이었다. 소위 ‘복음적 회심’(evangelical conversion)이 일어난 것이다. 존 웨슬리의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임한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이자 은혜였다. 비로소 존 웨슬리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saving faith)을 얻었다.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이를 계기로, 존 웨슬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성서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했으며, 이후 어디에 있든지 분명하고 오랜 전통을 가진 성서적 기독교를 전파했다.

이는 당시 이신론(理神論, Deism)의 영향으로 구원을 위해 인간의 자유와 선행을 강조하던 영국교회의 입장과는 다른 길이었다. 이신론은 자연신교(自然神敎)였다. 유신론은 신이 세계를 창조한 후에도 초자연적인 섭리와 기적을 통해 세계의 운행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이신론은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세상을 창조한 후에는 세계의 운행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나 이적(異蹟, miracle) 혹은 기사(奇事, wonder)와 같은 초월적이며 초자연적인 것은 믿지 않았다. 성서 역시 불완전한 책이며, 성서의 기록에는 오류가 많고 가치없는 것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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