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텍스트! 컨텍스트! 컨텍스트!”

필자의 지도 교수였던 게렛신학대학원의 제니퍼 브룩스 교수는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컨텍스트라며 위와 같이 강조했다. 이는 변화된 현대설교학의 강조점을 보여주는 말이다. 전통적인 설교에서는 콘텐츠가 중요했지만 현대설교학은 컨텍스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설교에서는 모든 성경 본문이 시대와 상황의 변화와 관계없이 자명한 진리를 담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문자 그대로를 잘 해석하면 됐다. 성경의 어떤 구절이 어떤 맥락에서 기록되었는지와 관계없이 그 문장 자체가 갖는 의미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므로 성경 구절들을 본문의 맥락과 관계없이 인용하거나 설교하고자하는 주제에 맞춰 해석하는 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또한 본문을 어떤 발화의 맥락에 꼭 맞추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현대설교학자들은 성경 본문의 의미는 맥락(context) 속에서 적절하게 이해될 수 있다는 화용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에 본문을 컨텍스트와 관계없이 해석하는 것은 의미의 일탈이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본문이 문맥 속에서 갖는 의미와 본문이 발화 상황에서 갖는 의미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제대로 본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문의 문맥을 무시한 채 특정 구절을 이해하는 예를 들자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는 말씀의 해석과 활용을 들 수 있다. 이 구절은 욥의 세 친구 중 하나인 빌닷이 욥의 고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는 내용 중 일부이다. 빌닷은 욥이 당한 고난은 욥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지은 죄의 결과이므로 욥이 하나님께 간구하고 마음을 청결하고 정직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회복하게 하리라는 말을 한 이후에 위와 같은 말을 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말하는 미약한 시작이란 예상치 못한 고난으로 인해 인생이 크게 축소되고 연약한 상태에 있는 상태이며 심히 창대할 것이라는 말은 대단한 성공보다 욥의 인생이 회복되리라는 말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이 말은 고난 이후 좌절한 욥에게 경책과 위로, 격려를 담아 권고하는 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문의 맥락을 무시하고 구절 자체의 문자적 의미만을 가지고 해석하거나 본문의 맥락과 상충하는 독자 혹은 청중의 맥락에 대입하여 축복의 말로 의미를 왜곡하여 설교하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된다. 맥락을 떼어 놓고 문장 그 자체만 보자면 이는 현재의 미약함과 미래의 창대함을 대조함으로써 미래적 축복을 선포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므로 맥락을 무시하여 문자적 의미로만 본다면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하는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격려와 축복의 말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본문을 개업예배 시 메시지로 전하곤 하는데, 문장의 문맥을 생각한다면 무언가 어색한 느낌을 주게 된다. 본문이 문맥에서 갖는 의미와 설교 상황에서 이 본문이 갖는 의미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려면 새출발하는 사람들을 위한 축복의 메시지보다는 커다란 실패와 고난을 당해 좌절한 사람에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시 시작할 것을 격려하는 권고의 메시지로 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솔로몬이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잠 25:11)”라고 한 바와 같이 말은 맥락에 적합해야 가장 적절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컨텍스트를 고려한 본문해석이 중요한 이유이다. 자신의 생각이 앞서서 글의 본뜻이나 전체적인 맥락을 무시하고 글의 일부를 잘라내어 의미를 왜곡시키는 단장취의(斷章取義)나 경우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가 붙이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어리석음을 버리고 경우에 합당한 말을 고민하는 설교자들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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