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형상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빛이 어떤 모양인지 모른다. 우리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빛이 있기 때문이지만 정작 빛은 모양이 없기에 어떠한 것이라고 묘사하기가 어렵다. 빛이 형상이 없듯이 하나님도 형상이 없으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자해도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지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읽는 것이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빛의 성질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발견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인간이 빛을 지각할 수 있는 것은 빛이 물질에 부딪혔을 때이다. 빛이 물질에 부딪힐 때 물질의 성질에 따라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며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낸다. 또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빛이 물질에 부딪혀 통과하지 못할 때에 빛이 가려진 부분이 검게 보이는 것이다. 빛은 형상이 없지만 물질에 부딪힐 때 그것이 어떤 성질을 가졌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들어오실 때에, 특별히 인간의 삶 속에 역사하실 때에 그 부딪힘을 보고 하나님이 어떠한 성품이 있으시고 어떠한 방식으로 일하시는 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들어오셔서 그 피조물들 가운데 어떻게 스스로를 드러내는지를 보여주는 계시의 책이다.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원리를 유비적으로 적용하여 우리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관해 말할 수 있다.
성경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만난 하나님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살아가던 이집트 땅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탈출할 수 있었는지를 기록한 것이고, 다윗의 시편은 그가 인생에서 부딪힌 하나님을 노래한 것이다.
복음서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절망적인 죄와 불의에서 온 인류를 구원하심을 목격한 것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기록이다. 우리가 빛을 지각할 때에 총천연색으로 보는 것처럼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 경험을 기록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어떤 이는 이야기로, 어떤 이는 노래로, 어떤 이는 잠언으로, 혹은 대화와 논쟁으로, 혹은 서신을 주고 받음으로, 혹은 묵시와 환상을 고백하는 방식으로.
성경의 저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 경험을 기록하고 있으나 성경 전체에서 발견하는 공통된 패턴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문제에 응답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겪는 인간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바로의 압제와 폭정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다윗도, 앗수르의 침략과 죽음을 앞둔 히스기야도, 소경 바디메오도 부르짖는다. 어떤 이들은 문제를 겪으며 하나님께 부르짖기보다는 원망하기도 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도 하고, 혹은 다른 이들과 다투기도 한다. 광야에서 굶주리고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와 다툰다.
이렇게 문제를 만난 인간들의 상황과 행동은 그림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설교자들은 이 그림자에 관해서만 말한다. 그러나 탁월한 설교자는 그림자 배후에서 빛이신 하나님에 관해서 말한다. 하나님은 숨어계신 것처럼 보이지만 숨지 않으신다.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삶 배후에 룻과 보아스를 통해 그녀의 삶을 바꾸어 놓으시고, 광야를 걷는 이스라엘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시고, 아둘람 굴과 광야를 방황하는 다윗의 인생을 인도하신다. 그림자 배후의 빛을 보듯이 설교자는 이처럼 인간의 곤경 배후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설교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