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셩교누가복음젼서(서상륜 역, 1882년), 漢韓新約聖書(이수정 역, 1884년), 토마스 목사 성경 전달(1866년), 귀출라프 선교사 한문 성경 전달(1832년)을 대략 한국 성경 전래역사로 보는데, 이보다 훨씬 앞선 1816년 9월 5일, 충남 서천 마량진 앞바다에 출현한 영국 함선 선장으로부터 이곳 수군 첨사 조대복이 성경을 받았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 성경 전래역사다.
애머스트 경이 인솔한 영국의 중국파견사절단이 두 대의 함정으로 옹진군 대청 군도 등 서해안의 여러 고도를 탐사하는 중 서천 비인만에 정박하였다. 조선 수군과 대영제국 해군은 언어 불통에도 교제를 나누었으며, 떠나는 날 수군 첨사 조대복이 맥스웰 함장으로부터 성경을 선물로 받는다. 1611년 초판 발행 킹제임스성경(KJV)인데, 기록상 한국 최초 성경 전래의 역사다.
귀국한 사절단이 항해기 3권을 출판했는데, 조선 섬들과 주민의 실태를 생생하게 그려내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35년 백낙준 박사가 영국 왕립 아시아협회 조선지부 회지에 ”중국파견사절단의 조선 서해안 방문 사실은 함장 바실홀의 조선 서해안 및 류큐섬 항해기가 1818년 출판됨으로 잘 알려졌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출판으로 이에 대한 조선 측 자료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또 1971년, 김양선 목사가 사절단 항해기에서 조선 서해안 부분의 초역을 한국기독교회사 연구 라는 책에서 ‘바실 홀과 머리 맥스웰의 내항과 그 종교 및 문화사적 의의’라는 제목으로 소개하였다.
또한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김석중 씨가 애써 자료를 구하며 연구하였으니 1818년 판 바실 홀 함장 항해기 원서 Account of a Voya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 and the Great Loo-Choo Island』(조선 서해안 및 류큐 제도 발견 행해기)를 구했다. 항해기에는 당시 주민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김석중은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승정원일기 등 조선 역사 기록서에서 당시 사절단의 서해안 답사 기록 부분도 확인하였다. 이를 토대로 사절단의 조선 서해안 항해기를 소개하는 책 10일간의 조선 항해기』(2000년)를 발행하였다.
이처럼 사절단의 조선 서해안 방문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천군과 서천군기독교연합회는 4차례 학술대회를 열고, 충남 서천 마량진 갈곶이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라고 완벽하게 확증했다. 기념관 부지를 마련하고, 한국 최초 성경 전래 200주년인 2016년 9월 5일 기념관을 개관했다. 기념관에 전시된 4권의 킹제임스성경 중 한 권은 세계적 희귀본으로 1611년 5월 초판 발행 원본 300권 중 하나다. 현재 세계에 이 진본 성경이 30권 안팎으로 남아있으며 가격은 3억원, 한국최초성경전래기념사업회에서 2016년 8월에 들여왔다.
이처럼 선교사보다 먼저 우리나라에 성경이 전달된 역사적 사실과 역시 선교사 입국 전 서상륜, 이수정을 통해 우리말 성경이 번역‧보급된 것은 말씀으로 이 땅을 먼저 찾아주신 하나님의 섭리다. 이리하여 한국교회는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는 교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 개신교 선교역사의 기점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한 1885년으로 보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입국은 사람인 선교사의 입국만 못하단 말인가?
언더우드가 들고 입국한 이수정 역 한글 성경은 1,000부가, 1883년 서상륜 역 한글 성경은 3,000부나 간행되었다. 이처럼 선교사 입국 전 성경이 널리 보급된 것은 분명 하나님이 하신 선교역사요, 1816년 9월 5일은 한국 최초 성경 전래역사뿐 아니라, 한국 개신교 선교역사의 출발점이다.
그러니 선교역사의 기점을 1885년에서 1816년으로 69년 앞당겨야 한다. 두껍고 크며 세월의 흔적과 함께 찌든 양가죽 표지의, 신성함마저 느끼며 숙연하던 유리 상자 안의 그 성경을 다시 가서 보고 싶다. 책상 위의 작은 HOLY BIBLE (KJV)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만져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