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문제는 교인 감소가 아니다
‘변화되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핵심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8절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과 더불어 성경 전체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아주 익숙한 몇 구절 중 하나다. 목회자들이 이 내용을 많이 설교하며 강조했다. 이 구절이 왜 중요한가? 목회자들이 왜 그렇게 이 내용을 강조하나? 한국교회는 이 구절을 정당하게 해석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이 구절에서 문장의 중심 요소를 찾아보자. 부차적인 내용을 빼는 방식으로 해보자. ‘성령이 임하셔서 너희가 권능을 받으면’이란 내용은 조건절(條件節)이다. 빼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에서’라는 내용은 장소를 나타내는 설명이다. 빼자. 이제 남는 것이 중심 요소다. ‘너희가 내 증인이 된다’는 것이다.

내 증인(證人)은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람 인(人)이 있으니, 사도행전 1장 8절의 핵심은 ‘너희가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이 된다. 전에는 자기를 자랑하고 자신을 주장했는데,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오시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고 전하는 사람이 된다. 사람이 변한다.

사도행전 1장의 이 유명한 구절을 ‘성령이 오시면 전도한다’는 것으로 단번에 해석하면 안 된다. 전도한다, 곧 증언한다는 행동 이전에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는 존재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요, 그 다음에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1520년 저술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행이 선한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 선한 사람이 선하게 행동한다. 악한 행위가 악한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 악한 사람이 악하게 행동한다. 따라서 선하게 행동하려면 언제나 반드시 그보다 먼저 본질 또는 사람 자체가 선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여기에서 아주 유명한 기독교의 저 명제가 나온다. ‘존재(存在)가 행위(行爲)보다 앞선다.’ 종교개혁 신앙의 근본 명제요 성경적인 구원론의 심장이다. 성령의 역사로 말씀이 살아 움직이며 사람이 변화된다. 그렇게 변화된 사람이 말씀대로 살며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우선적인 가르침은 인격과 일상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요 나의 구세주이신 것을 믿고 나의 존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 요점이다. 이 토대 위에서만 제대로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다. 사람됨이라는 존재의 변화가 먼저요, 행동이라는 실존의 상황이 나중이다. 이 둘은 떨어질 수 없지만 순서가 중요하다. 순서를 바꾸면 로마가톨릭의 논리가 된다.

한국교회가 사도행전 1장 8절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사람됨이 먼저요 중심이라고 생각해 왔는가? 사람됨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되도록 많은 사람을 교회로 데리고만 오면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복음의 증언은 절대 명령이다. 어느 교회의 성장 수단이 아니다. 사도행전에는 어느 지역 한 교회의 양적인 교세가 커지고 또 커지고 계속 커진다는 교회 유형은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교인 출석 숫자나 재정의 감소가 아니다. 변화되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문제의 핵심이다. 교회를 향한 사회의 비난이 성경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비난의 대상이다. 교회에 쏟아지는 온갖 비아냥은 교회는 다니는데 사람 됨됨이가 부실한 사람들 때문이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전도용 구호로 써먹은 것을 회개해야 한다. 성경의 문맥에 따른 참 뜻을 구(求)하며 이 구절을 구(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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