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도서관에서 읽을거리를 찾는 중 눈에 띈 책이 있었다. 인간다움 과 사람공부  였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며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과 소통에 대한 생각을 하며 두 권의 책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을 인용하여 글을 써본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며 표정과 동작을 사용해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워왔고, 의미를 이해하는 방법을 숙달해 왔다. 그래서 앞에 있는 사람이 농담을 하는 건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건지 쉽사리 파악한다. 그러나 온라인이 소통의 중심이 되면서 대면적이고 구두적인 의사소통의 양은 대폭 줄고, 문자를 통한 텍스팅 형태의 의사소통이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 이런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동작과 표정은 물론, 음성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은 점점 쇠퇴하고 있다.”

목회는 牧羊(목양)이다. 목자가 양의 음성을 알아야 하듯 목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성도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공감하기 어렵고, 소통이 되지 않는다. 마음을 읽어야 한다. 목사가 자신이 주도하는 사역에 바빠서 돌봄과 양육을 하지 못하여 성도들의 삶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일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이후 일상에 자리를 잡고 있는 비대면 소통은 간결하고 단순하게 용건을 전달하는 이점을 보이지만, 공감 능력을 잃기 쉽다. 

“인터넷을 통해 의사소통이 확대되는 것이 사회적,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어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공감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인터넷 소통은 단순하다. 언제나 용건만 있다.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동력집단으로 엮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소통은 개인들이 서로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고 소속감을 증진시킨다.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유함으로써 정서적 고립감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들의 공감능력에 도움이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공감은 상대방에게 감정 이입해 그의 어려움을 더불어 염려하는 타자 지향적인 정서다.”

목회자는 타자지향적인 정서가 필요하다. 성도들의 실상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소망을 줄 수 있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필수적이다. 성도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자기주도적으로 사역하는 이들이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저하되는 것은 감정이입 능력이 떨어짐을 의미하고, 이는 공감능력 저하로 이어진다. 공감능력의 저하는 거리감이 생기며, 분리의 징후를 보일 수 있다.

온라인 소통은 상대방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를 읽어내는 훈련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하며 소통하면 내가 하는 행동이 상대방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능력이 약화된다. 이는 상대방과 공감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타인들과 조율하는 능력도 떨어뜨리게 된다.  

대면소통에서는 음성 이외에도 얼굴 표정, 신체동작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자로 농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모티콘과 온갖 특수문자를 사용하더라도, 문자화된 농담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대면적 대화에서 사용되는 표정이나 몸짓, 뉘앙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면소통에서는 짓궂은 표정만 짓더라도 농담임을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데, 이것 없이는 진담으로 오해받기 쉽다. 사람공부 라는 책은 논어의 내용을 담론으로 목회자는 물론 사람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상호 소통이 되지 않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성장동력을 잃은 교회들이 있다. 목회자는 교회라는 현장에서 성도들과 대면하며 공감능럭을 배양하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야 성장동력을 구축할 수 있다. 대면소통이 사라지는 시대이다. 

사명감과 열정과 지식은 있으나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사람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다움’과 ‘사람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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