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침체(혹은 퇴행)에서 회복한 후 이명직 목사는 자신이 영적 침체를 겪은 원인을 몇 가지로 분석했다. 무엇보다 그가 “청년의 정욕”(딤후 2:2)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넘어뜨린 청년의 정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학식에 대한 욕심이다. 사역을 하려면 문학, 법률, 철학, 웅변, 상식을 모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에만 집착하고 다른 것은 개의치 않았다. 결국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기도와 성경 읽기에 게으르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피력했다. “기도는 별 소용이 없는 일종의 종교상의 형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성경 읽는 것도 게으르게 되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불합리하게 생각 되던 때도 많았다. 따라서 성경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고 말았다.” 은혜의 수단을 소홀히 여기고 그 자리에서 멀어지면서, 처음 은혜의 감격과 감사의 마음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물론 성경을 완전히 멀리한 것은 아니었다. 성경을 종종 읽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사모하여 본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몇 구절 읽었을 뿐이다. 그것도 영의 양식을 구하기 보다는 지리, 역사, 연대, 인물, 풍속을 아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손에서는 성경보다 일본 와세다 대학의 문학강의록이나 시문집, 소설과 같은 서적이 떠날 시간이 없었다. 기도 시간, 성경 읽는 시간, 심방하는 시간, 전도하는 시간까지 다 빼앗기고 말았다. 얼마나 집착했는지, 결국 육체의 건강에 손상이 오게 되었고 안질까지 얻게 되었다. 박봉에 책을 사느라 빌린 돈 때문에 오랫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 사이 그의 영혼도 주리고 목말라 파리하게 죽어 갔다. 이명직 목사는 그때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토요일이 되면 주일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탄다. 소설, 성경, 사전, 시집을 일일이 방에 쫙 펴놓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어떻게 유식하게 할까, 어떻게 슬프게 하여 청중의 심정을 흔들까, 어떻게 웅변을 할까, 어떻게 칭찬을 받을까,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할까’를 연구했다.”
이런 상황은 이명직 목사가 성서학원 교수로 재직하는 중에도 여전했다. 목사안수 후 그는 충남 부여의 규암전도관에서 사역했다. 그러다 1916년 가을에 성서학원 교사로 임명되었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1914년에 교단을 떠나버린 정빈의 빈자리도 채우고, 독립운동을 하는 외척 때문에 일제의 압박을 받던 김상준의 후일을 대비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 같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교수의 자리에 앉기는 했다. 그러나 이명직 목사의 영적 상태는 “냉담하고 해골 같은 형상”이었다. 훗날 그는 자신의 치부를 이렇게 드러냈다. “전에 은혜를 받은 적이 있지만 도적 맞은 지 오래고, 마귀의 불화살에 중독된 내가 무슨 교사의 자격이 있으며, 또한 무슨 선량하고 신령한 젖을 내어 후진을 양육하랴! 나는 나의 과거의 그림자를 볼 때 자연히 비통함을 금할 수 없고, 양심의 수치를 참을 수 없다.” 특히 성결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던 자신의 실상을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그때 성결을 교리로는 알았지만 체험하지는 못했다. 성결에 대한 설교는 하였지만 성결을 행하지는 못했다. 성결에 대해 변론은 하였지만 성결을 간증하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겸손하고 정직하게 기도하여 구하지도 않았고, 의심의 깊은 골짜기와 자욱히 안개 낀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적 침체나 퇴행은 대체로 그리스도인이 은혜의 수단에 집중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자리하고 있다. 교만과 정욕 그리고 탐욕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레시피이다. 따라서 로이드 존스의 교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영적 침체의 유일한 한 가지 원인은 결국 우리 영혼의 원수 마귀의 존재입니다.... 마귀가 영적 침체를 일으키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그 존재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마틴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 . 31).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