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의 경험은 사회적 고립과 소외를 경험하게 하였으며 사람들의 관계가 소원해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 관계의 소홀함으로, 교회의 예배와 공동체 활동은 차선의 선택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팬데믹이 지나간 자리에 영혼의 그림자인 외로움이 남겨졌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홀로 있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두 가지 말이 있는데, 그것은 혼자 있는 것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외로움’이고, 다른 하나는 혼자 있는 것의 영광을 표현하기 위해 ‘고독’이라 하였다.
그런데 혼자 있는 고통인 외로움이 혼자 있는 것의 영광인 고독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단어를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선택’과 ‘관계’이다. 고독의 긍정적 경험과 부정적 경험의 결정적 차이는 선택에 있다.
혼자 있어야겠다는 ‘결정’을 기반으로, 이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기 결정적 고독’과 타인으로부터 부과된 ‘비자기 결정적 고독’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선택적 고독이라고 하더라도 고독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는지에 따라 고독 경험의 결과가 달라진다.
고독의 경험은 관계적 측면과 비관계적 차원으로 나눌 수 있는데, 비관계적 차원은 고독을 경험하면서 모든 관계가 끊어져 고립되고 원하지 않는 분리로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적 측면은 고독을 경험하면서도 내면이 자기와의 관계로 나아갈 때, 그것은 자기 발견과 창조성을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고, 또 다른 방향으로는 공동체와 영성으로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된다.
고독을 경험하면서 내면의 자아와 관계적 차원으로 나갈 때, 인간의 한계와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회심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고독의 한계상황과 복음의 수용성
고독의 경험은 믿는 사람에게는 영적 성장의 기회가 되며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복음을 받아들일 회심의 기회가 된다.
서울신학대학교 하도균 교수는 전도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한계상황을 경험하면 복음의 수용성이 높아지고 한계상황에 따라 전도 대상자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외로움과 부정적 고독의 상황은 복음의 수용성이 높아진 상황이며 사회적 배경과 관계, 문화의 접촉점에 따라 고독의 경험이 회심의 기회로 발전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고독의 한계상황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부딪히고 나서야 하나님을 찾고 자신을 양보하기 때문에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 기회가 된다.
고독을 통한 회심의 가능성
물론 고독이라는 한계상황에 있는 사람이 모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회심을 가능케 할까? 세 가지로 요약해 보자면,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종교성과 사회자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선천적인 타고난 욕구, 즉 종교적 욕구가 있다. 종교성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삶의 통제가 어려워질 때 도움의 손길을 갈망하게 한다. 고독은 인간의 종교성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또한 부정적인 고독 상황에서는 사회자본이 신뢰와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는 종교적 회심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마련한다. 종교사회학자 스타크(Rodney Stark)와 핑키(Roger Finke)는 종교적 선택을 개인의 회심과 집단의 개입으로 구분해 설명하면서, 종교적 선택은 교리나 명제 중심이 아니라 사람들의 네트워크, 혹은 사람들과의 밀착도에 의해 주도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보편적 사회 신뢰 관계에서 특수한 사적 신뢰의 관계가 회심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고독한 자에게 사회적 자본을 바탕으로 한 환대와 함께해주는 신뢰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때, 고독한 자들의 회심은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 밀착도는 전도 방법에 대한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90년대 사회는 근대화와 민주화로 산업 성장이 있었으며, 이때 전도폭발이나 대중 전도와 집회 형식의 전도 방법이 주류였다. 그러나 2000년대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맞춤 전도나 가족관계 전도의 방향으로 전환되는 흐름을 볼 수 있다.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회심 중심의 전도로 변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그 근본을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관계 중심으로 우리를 창조하셨고 교제하기 원하셨기에, 지금도 하나님은 그 관계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실제로 전도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중심이다. 외로움도 고독도 모두 관계가 회복되지 않았기에 경험하는 것이다. 틸리히는 인간의 소외된 실존의 모습을 세 가지 표지로 묘사하는데, 그것은 불신앙, 교만, 욕망으로 인간의 죄의 결과 때문에 하나님과의 연합이 분리되어 실존적 소외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
이제 이러한 소외로 인한 외로움과 고독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관건이다. 죄로 소외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중재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셨기에, 분리된 것이 그 안에서 다시 결합할 수 있고,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그의 세계, 인간과 그의 자신을 화해시켜 재결합 될 수 있다.
교회는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가?
2023년 10월에 19세 이상 412명을 대상으로 종교 유무에 따른 외로움의 정도와 고독의 동기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하였다.
무종교인과 타종교 기독교인의 그룹 간 외로움의 정도를 비교했을 때, 각 그룹의 평균의 차이는 없었지만, 무종교인이 고단계의 외로움을 경험하는 비율이 다른 그룹에 비해 높았으며, 타종교는 중증도의 외로움의 비율이 높고 기독교인은 저단계의 외로움을 경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외로움과 고독을 극복하기 위한 종교 의지도는, 개신교가 85.4%, 타종교가 50.5% 무종교가 36.5%로 개신교가 외로움에 종교가 도움이 된다고 가장 많이 응답하였다.
515명의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기독교인의 67.7% 이상이 중증도 이상의 외로움을 답하였다. 그러나 신앙의 단계가 높을수록, 교회 안에 의미 있는 관계가 있을수록, 교회에 정기적인 소그룹 모임에 참여할수록 외로움의 정도가 낮았다. 이 조사의 결과는 기독교가 외로움과 고독을 신앙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가 진정한 회심 사역을 통하여 외로움을 가진 자를 고독한 자로 바꾸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환대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고독의 광야에서 가난한 마음으로 자신의 유한한 존재를 알고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를 깨달을 때, 그 고독 속에서 진정한 영적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인간이 되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단절이라는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셨기에, 결국 예수님의 고독이 오늘 우리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주었으며 영생에 이르게 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었다.
성경에 보면, “너는 말 못 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잠언 31:8)”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예수님이 중재하시듯, 고독을 경험하고 고독한 자들을 위해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고 함께 울어 회심에 이르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