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부끄럽게도 아주 오랫동안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시늉만 하면서 달려있기만 하였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결속시키는 십자가의 메시지, 기독교의 메시지를 제 몸으로 체화시키지 못하여서 십자가를 허무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대 십자가형의 잔혹함을 바라보면서, 나의 신학과 설교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는지를 회개합니다. 허무한 십자가가 아니라 완전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증언하기만 하지 않고 나 자신이 완전한 십자가에 달려 죽기를 소망합니다.”(전우철, 뉴저지 열방교회, 한국성결신문 제1406호)

▨… 이 글은 우리 성결인 전우철 목사가 M. 헹엘의 십자가 처형 을 소개하면서 젊음 때문인지 겁 없이 쏟아낸 고백 속에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뉘있어 전우철 목사의 이 고백을 젊음이 빚어낸 만용이라고 꾸짖을 수 있을까. “나 자신이 완전한 십자가에 달려 죽기를 소망합니다”라는 전우철 목사의 회개는 이미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애오개가 ‘들을 귀’를 못가진 탓일까, “나의 십자가는 시늉뿐이었다”는 회개를 뛰어넘는 어떤 움직임도 아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 그럼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 성결교회를 붙들고 있음을 드러내 주는 단적인 증거는 제118년차 총회장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2박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갈등과 대립의 상처를 씻어내고 ‘회개와 상생으로 교단 120주년 맞자’는 결의를 다지는 모습은 성결인다운 믿음의 실천이었다. 그렇다. 우리 교단은 성결교회이다. 나의 십자가는 시늉뿐이었음을 교단의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하는 전통이 살아있는 교회이다.

▨… 한국성결신문은 제118년차 총회에서 자신의 십자가는 시늉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아파하는 모든 총회원들의 회개가 한국성결신문의 ‘정론직필’을 요청하고 있음도 확인하였다. 따라서 한국성결신문은 교단지이면서도 신문다운 신문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계속해서 물을 것이다. 신문의 독립경영에 만족하거나 천착하지 않고 성결인의 양심으로, 행동하는 믿음의 자리를 지키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

  ▨…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자신의 십자가가 시늉뿐이었다는 부끄러움을 토해내기도 하지만, 나의 믿음의 방향을 세워주는 은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인도한다고 할 때 당신이 함께해주지 않으시면 스스로 자멸의 길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을 제118년차 총회가 명심하며 출범하도록 한마음의 기도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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