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총회 마친 신임원들 
두암-하리-강경-병촌교회 등

교단 주요 사적지 4곳 순례 새로 선출된 제118년차 총회임원들이 교단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교단의 주요 순교지에서 첫 일정을 시작했다.

총회장 류승동 목사 등 임원 7명은 118년차 총회를 마친 후 지난 5월 31일 두암, 하리, 강경, 병촌교회 등 주요 순교지 4곳을 순례했다.  3일간의 총회 회무로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였지만 강행군에 나섰다.

이번 순교지 순례에는 문창국 총무를 비롯해 총회본부 국장과 과장, 팀장 등 직원들도 동행했다.

첫 방문지는 두암교회(홍용휘 목사)는 6.25전쟁 당시 23명의 순교자가 나온 순교지다. 총회임원들은 홍용휘 목사의 안내에 따라 좌우 16개의 돌비를 설치한 순교영성의 길을 통해 두암교회 본당 안으로 들어가 두암교회 23인의 순교이야기를 드라마 형식으로 만든 동영상을 시청했다. 이후 두암교회 본당 옆에 조성된 ‘순교 23인 합장묘’와 ‘23인 순교기념탑’ 등을 둘러보고 헌화하며 23인이 흘린 순교의 피를 기억했다. 순교자의 뒤를 따라 복음을 위한 헌신을 다짐하는 특별한 성찬식도 갖고, 순교자들처럼 복음의 종을 울리겠다는 의미를 담아 차례로 타종의식도 가졌다.

두번째 순교지 전북 완주군 삼례읍 하리교회(이병성 목사)에서는 임광호 전도사의 순교 이야기를 들었다. 1950년 하리교회를 개척한 임광호 전도사는 성전건축 기공예배를 드리고 일어난 6.25전쟁 당시 피난을 거절하고 성전 건축을 계속하다가 공산당에게 끌려가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 이후 김복순 사모도 구속되었으나 겨우 풀려나 하리교회를 무사히 건축했다.  

다음 유적지는 충남 논산 강경교회(강요한 목사). 임원들은 이곳에서 일제에 저항하며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벌여 신앙과 민족정신을 지켜낸 강경교회의 강직한 신앙을 되새겼다. 1924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백신영 전도사와 주일학교 김복희 선생, 학생 57명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면직과 퇴학 등의 처분을 받았다. 1925년에는 주일학교 윤판석 학생을 중심으로 일본의 역사교육을 거부하며 항거했고 1943년에는 이헌영 목사가 천황심판론을 주장하여 구타당하고 수감되기도 했다. 

이어 임원들은 마지막 순례 여정으로 공산당에 66명이 순교 당한 병촌교회(이성영 목사)로 이동했다. 


병촌교회는 1943년 신사참배 거부로 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되고 1950년 9월 27일과 28일 이틀간 공산 세력의 무자비한 총칼에 의해 신자 66명이 순교 당하는 아픔을 견디어낸 교회다. 전체 성도 74명 중 남자 27명, 여자 39명 등 총 19세대의 가족을 잃었으며 이후 공산 세력에 가담한 마을 사람들을 용서하고 포용하며 무너진 마을과 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앞장서 1956년 순교자 기념교회를 세웠다. 병촌교회 다큐멘터리 형식의 순교 영상물을 시청하고 순교기념탑을 참배하는 것으로 모든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총회장 류승동 목사는 “순교자들의 흘린 피를 기억하고 그들의 희생으로 오늘날의 성결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매 순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118년차 임원과 총회본부 직원들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