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은 500여 편의 책을 저술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논문에 해당하는 글도 많이 남겼다. 그의 대표적인 논문이 『탕론』이다.
“통치자의 지위는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아니면 땅에서 솟아난 것인가. 마을 사람들이 추대하여 이장(里長)이 되고 현장(懸長)들이 추대한 사람이 제후가 되는 것이요, 제후들이 추대한 사람이 통치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통치자는 백성이 추대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추대해서 이루어진 것은 또한 사람들이 추대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권력의 기원이 아래로부터의 합의에 근거하니 그 합의가 무너지거나 추대한 이유가 없어지면 통치자는 퇴진하거나 끌어내려져야 한다. 이 원리는 단위가 크거나 작거나 똑같다. 즉, 천자라도 백성들의 합의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
절대군주의 봉건왕조의 조선시대에, 다산은 잘못하는 군주나 통치자에게는 백성들이 저항해야 하며, 그래도 듣지 않으면 쫓아내야 한다는 맹자의 방벌론을 옹호하고 나섰던 것이다.
맹자 를 읽어 보면 성인임금 탕이 걸이라는 독재자를 추방했고, 성인임금 무왕은 주라는 독재자를 벌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맹자에게 물었다. 신하가 임금에게 그래도 되는 거냐고, 이에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仁)과 의(義)를 해치는 사람을 적과 잔이라 한다. 잔적은 일개 못된 개인인데, 그는 독부, 즉 독재자이니, 독재자를 방벌(덕을 잃고 악정을 행하는 임금을 내쫓는 것)했을 뿐, 신하가 임금을 내친 것이 아니다.”
다산은 잔적의 인간을 방벌함은 보편적이요, 정치의 기본원리이며 정당한 도리임을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200여 년 전에 주장했다.
『탕론』은 다산을 공부하기 시작한 후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이다. 근래 한국 개신교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이 글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200년 전에 다산은 고대 요순시대를 그리워하면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고 통치자는 백성들을 위해 존재하는 공복(公僕)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교회의 지도자인 담임목사는 교인들 합의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다. 만약 목회과정에서 교인들과의 신뢰가 무너지면 또한 교인들의 합의에 따라 담임목사의 직에서 내려오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보편적이오, 상식이다.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어느 교회의 목사가 목회과정에서 교인들을 향한 불성실한 언행으로 문제를 일으켜 인(仁)을 해쳤다. 교회재정을 부정하게 사용하여 의(義)를 해쳤다. 잔적이 된 것이다. 교인들은 합의에 의해 담임목사의 사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교단법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교단법에 의하면 담임목사 본인이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는 이상 담임목사를 내보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권력과 법을 누가 만들었을까? 교인들의 신앙적 유익을 위해 교인들의 합의에 의해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목사들이 욕심대로 자신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이것은 한국 개신교 어느 교단이나 비슷하다. 결국 교인들과의 대립 끝에 담임목사는 3개월간 설교강단에 서지 못하다가 다른 교회 담임목사와 자리를 교환하면서 교회를 떠났다. 그동안의 교회 파행에서 나오는 피해는 오로지 교인들의 몫이었다.
역사적으로 잔적이나 독재자는 방벌이론을 언제나 무시했다. 진시황 때 불온사상이라 하여 분서갱유의 비극으로 이어졌고 나라는 결국 2대 황제에서 끝이났다. 이후 모든 나라는 인과 의를 무시하는 잔적들과 독재자 때문에 망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인과 의, 즉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지 못하고 해치는 잔적 목회자들이 개신교회를 세상의 걱정거리로 만들고 있다. 한국교회도 이대로 망할 것인가? 다산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