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리앙이 묻는다. 당신에게 “예루살렘이란 게 뭡니까(What is Jerusalem worth)?” 살라딘은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지(Nothing).” 허탈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발리앙에게 살라딘은 돌아서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말한다. “모든 것이기도 하지(Everything)!” 중세기 십자군 전쟁을 소재로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킹덤 오브 해븐>의 끝부분에 나오는 대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순적 정체성과 가치관 그리고 사명을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발리앙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모든 것이었던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포로의 몸값으로 자기 재산까지 다 내놓는다. 살라딘은 이집트에서부터 아라비아 예멘 이라크까지 엄청난 영토확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예루살렘을 정복해야만 예루살렘 정복을 기치로 세운 아이유브 왕조를 통해 무슬림제국을 이루어 나갈 모든 것 즉, 정치적인 야망을 달성하고 자기 권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모든 것은 무엇인가.
▨… 목숨을 걸고 성을 사수하는 발리앙과 그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수많은 병사를 잃은 살라딘은 서로 다른 신의 왕국을 선택하며 협상한다. 발리앙은 돌무더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성을 내어줌으로 백성들의 목숨을, 살라딘은 성안의 사람들이 갈 길을 열어 보내 주는 조건으로 성을 얻는다. 두 지도자는 서로 신의 평화를 빌며 헤어진다. 역사에서는 극단적인 가치관을 지닌 상대와도 타협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철학적 교훈을 얻는다.
▨… 영화는, 공존을 거부하여 얻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아무것도 아니지만(Nothing) 공존의 윤리를 받아들이면 모두에게 전부(Everything)가 되는 그때, 그 도성, 그 세계가 진정한 천국이라고 말한다. 이방인과 선민, 송아지와 사자, 독사와 어린아이 등 서로 다른 존재의 공존이 가능한 새로운 공동체가 곧 예수께서 선포한 하늘의 왕국일 터인데 교회와 교단 총회가 사람보다 정치, 권력, 성공 따위의 ‘아무것’이 ‘모든 것’이 된 듯한 느낌은 왜일까.
▨… 스스로 똑똑한 존재라고 추켜세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분리와 단절, 지배와 복종의 세계관에 사로잡혀 마침내 모든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겪는 세상이 된 지금(롬8:22), 더불어(sum) 삶(bios)을 살아내는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로 동행과 공존의 윤리를 찾아야 한다. 다가오는 교단 총회가 너와 내가 함께, 인간과 자연이, 교회와 사회가 더불어 살 수 있게 하는 일에 마음을 모아야 ‘슬기 사람’들의 모임일 수 있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