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국신민화 정책 항거하다 체포 뒤 순교
주기철 목사와 함께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인 감리교인 최인규 권사가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최인규 권사는 술 마시는 난봉꾼으로 살다가 전덕기 목사의 ‘술의 해됨’이라는 글을 읽고 회개해 40세에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자신이 사는 마을에 천곡교회를 개척하고 1935년 전 재산을 팔아 논 1,900평과 밭 4,200평을 마련해 교회에 헌납하고 집 없는 사람들을 전도하고 함께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최 권사는 1940년 5월 “나는 재산과 생명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고 하늘나라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하늘나라 일을 하지 부역이나 다른 일은 못하겠다”며 강제 신사참배, 창씨개명, 황국신민서 낭송, 일장기 경례, 동방요배 등 황국신민화 정책에 항거하다 체포됐다.
법정에서도 “천황도 하나님이 내신 사람이다. 십계명에는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이 뚜렷이 기록되어 있다. 신사참배는 결코 할 수 없다.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가 지금 강대할지라도 반드시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일갈해 징역 2년형을 받게 됐다. 옥중에서 지독한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늘 찬송을 부르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순교했다.
대전형무소에 유골이 방치되다가 해방 후인 1946년 3월 최인규 권사를 존경했던 김창주가 이를 수습해 삼척읍교회(현 삼척제일교회) 정문 오른쪽에 안장하고 감리회 강릉지방 삼척 구역 7개 교회들이 순교비를 세웠다.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기까지의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부연회 소속 천곡교회와 최인규기념사업회 등이 훈장추서를 청원했지만, 종교적 이유로 순교한 사람을 국가가 기념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계속 반려됐다.
2020년 10월 이철 감독회장 취임 이후 역사보존위원회가 초기 한국감리교회 인물들의 공적을 정리해 대정부 훈장추서 사업을 추진해 2차에 걸쳐 청원했지만 재차 반려됐다. 이후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삼척큰빛교회 집사)이 국가보훈부 장관 면담, 국가보훈부 상대 의정 질의를 통해 ‘신사참배 거부 순교는 종교 행위이므로 훈장서훈 대상이 아니다’라는 규정을 ‘황국신민화 정책 거부로 인한 사망이므로 순국’이라는 포상 기준 변경을 이끌어냈다.
5월 9일 아현감리교회에서 열린 ‘고 최인규 권사 훈장추서 감사예배’에서 이철 감독회장은 “우리도 최인규 권사님처럼 믿음의 중심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과제가 있다. 믿음으로 바로 걸어가는 감리교인과 감리교회가 되자”고 했다.
이날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유족 대표에게 감사패를, 이철규 의원, 민관기 목사(성안산형제들교회), 류호정 목사(철원소망교회)에게 공로패를 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