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은 진짜 잘 사는 것
범사에 감사함으로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인생이 아닐까
최근 서울신학대학교에 공무로 갔다가 존경하는 박영환 명예교수님 연구실에 들렀습니다. 박 교수님이 요즘 재밌게 보고 계신다고 하는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의 지금 다시 계몽 이라는 책을 펼쳐보다가 박 교수님이 ‘감정과 과거를 다스릴 줄 알아야 진정한 강한 사람이 된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인생을 살아라’라고 메모해 놓으신 것을 봤습니다. 박교수님도 “어디에서 본 글을 적어놓은 것 같다”고 하셔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위 글 중 북미 인디언 부족 쇼니족 추장 테쿰세가 한 말의 일부가 있었습니다. 주옥같은 그가 한 말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인생을 살아라. 너의 인생을 사랑하고, 완벽하게 만들고, 인생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여라. 당신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삶을 지속하여라. 결단의 순간이 오는 날을 위해, 숭고한 죽음을 늘 준비하라. 매일 아침 일어날 때 양식과 삶의 즐거움에 감사하라. 감사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그 잘못은 오로지 너에게만 있을 것이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온다면 남들처럼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마라. 남들처럼 엎드려 구걸하며, 조금 더 살게 해달라며 추하게 굴지 마라. 노래로 죽음을 환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영웅처럼 죽음을 맞이하라.”
저는 박 교수님에게 30대 초반에도, 50대 중반인 지금도 “지금이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얼른 할아버지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완벽하게 이루었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함께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사 맞는 것은 두려워도 결코 죽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테쿰세의 말 중 ‘매일 아침 일어날 때 양식과 삶의 즐거움에 감사하라’는 말은 지키고 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브리서 9장 27절)’고 합니다. 영원히 산다면 그리고 죽음 후에 심판이 없다면 그냥 마음 편히 살다 죽으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차이가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분명 성경은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올해 저의 나이 56세.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젊은 나이일수도 있으나, 이렇게 죽음을 생각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의 기도제목 중 하나는 ‘언제 어디서나 저의 가족과 법무법인 서호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선한 도구로 쓰임 받기’입니다. 그렇게 쓰임 받다가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때에 순종하며 하늘나라에 가고 싶습니다.
최근에 관람한 연극 <밑바닥에서>에서 ‘빼뺄’역을 맡은 배우가 말한 “한 가지 정말 절실한 건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야. 내가 나를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삶을…”라는 명대사를 기억합니다. 그동안 저의 삶의 모토는 “나의 아내와 딸·아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자”였는데, 그 연극을 본 후부터 “내가 나를 존경할 수 있는 삶을 살자”로 바꿨습니다.
얼마 전 아내와 ‘빼뺄’의 명대사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아내가 대뜸 저에게 “당신은 당신을 존경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손사래를 치며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더 늦지 않게끔 오늘부터라도 저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것을 하나하나 실천해 가고, 매 순간 내가 나를 존경할 수 있는 삶을 살자고 다짐한 것을 되새기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旅程)이기 때문에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죽음을 진짜 잘 준비하는 것은 삶을 진짜 잘 사는 것입니다. 또한 범사에 감사함으로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당신의 인생을 사십시오. 감사와 행복은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보면,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