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먼저 가해자의 회개가 있어야 하고
피해자인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용서는 성경의 근간을 이루는 복음의 핵심 내용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내용이 아니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이기 때문이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면 해야 한다. 그리고 형제를 용서하라고 하면 반드시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먼저, 복음의 핵심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죄지은 인간을 용서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는 죄지은 인간을 용서하기 위한 하나님 방법이다. 그러므로 용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복음은 ‘죄지은 인간을 용서하신다는 기쁜 소식’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구약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슈브’라는 히브리어는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것은 용서를 위하여 당신의 백성을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한 단어이다. 이 단어가 신약에 와서는 헬라어로 ‘메타노이아’ 즉, ‘회개하라’는 단어로 교체되어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세례 요한의 주된 메시지였고, 세례 요한의 뒤를 이어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첫 번째로 외치신 메시지도 이것이었다. 그런데 용서에는 공식이 있다. 수학도 아닌데 공식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수 있지만, 공식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면 ‘법칙’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 실제로 이것이 필요한 것은 진정한 용서를 경험하기 위한 것이다. 특별히 기독교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용서의 종교라고 알려지다 보니 용서에 관한 오해들이 많이 생겨나기도 한다. 피해자는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용서를 구함으로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용서를 경험하기 위하여 어떠한 과정이 필요하며 어떠한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먼저 용서를 위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어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 없이는 용서가 진행될 수 없다. 가해자가 스스로 가해자임을 인정하고 자신이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 인지되지 않고 어떻게 용서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의 회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스스로 죄인임을 인지하고 용서를 받아야 할 대상임을 자각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할 수 없다. 진정한 회심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독교 회심에는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복음을 듣는 각 사람에게 ‘죄에 대한 책망’을 통하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 없이는 진정한 회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었으면,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납해 주어야 한다. 즉 가해자의 죄를 그 죗값 대로 처벌하지 않고, 받아주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피해자가 이러한 결단으로 가해자를 용납하지 않으면 용서란 일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즉 뉘우치고 그 죄에서 돌아서는 행위가 필요하다. 이렇게 피해자의 용납과 가해자의 회개가 서로 충족되었을 때 화해가 일어난다. 화해는 용서의 열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화해가 일어나야 진정한 용서가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에서 보자면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했을 때, 그곳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으며 감사와 소망도 생겨난다. 하나님과의 화해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시작이다. 하나님께서 화해된 자에게, 그리고 그 장소에 임재하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용서의 공식을 성경에 적용해 보자. 먼저 창세기 3장을 보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깨뜨리고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한 가해자는 인간이다.

 죄를 지었다는 표현은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인간 욕망의 실천이며,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주인으로 통치하고 계시던 에덴 동산의 질서가 깨어지고 무너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이시다. 분명히 하나님은 창세기 2장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경고하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처럼 된다’는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으며, 그 결과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무시하였다. 이제 용서는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가? 하나님의 용납과 인간의 회개, 그리고 이것이 충족된 결과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경험할 때 용서가 완성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죄인이 회개만 한다면 용납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화해라는 용서의 결과는 전적으로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신다. 구원받았어도 또 죄짓고 넘어지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이미 용납하시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신다.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화해의 열매가 있다. 뉘우치고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아버지는 이미 용서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하나님의 진정한 용서가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화해의 잔치를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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