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의 체험. 영혼의 가장 큰 필요가 하나님의 위대하신 권능으로 충족되는 사건이고, 인생 최대의 전환점이다.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는, 아니 설령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새 마음의 창조가 일어난다. 하나님의 세계를 맛본 자가 어찌 덧없이 사라질 세상의 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는가! 이후 찰스 카우만은 세밀한 음성까지 분별하며 주님과 동행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자비와 진리가 넘쳐나는 샘으로 인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다. 이것은 그에게 평생 과업이 되었고, 죽음조차 그것을 방해할 수 없었다. 성령의 증거는 덧없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은혜였다. 찰스 카우만은 자신의 성경에 “나를 먼저 경험하라”는 말 옆에 성결한 자의 질서를 이렇게 기록하였다.
“하나님이 먼저다. 아내와 집은 두 번째. 전신사무소는 세 번째.” 삶의 우선순위가 확고했고, 이후 여생 동안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가정을 위해 목회사역을 포기할 것이라면, 목사안수는 왜 받았는지. 사역을 위해 팽개쳐버릴 가정이라면, 결혼은 왜 한 것인지. 곳곳에서 들려오는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비탄의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사중복음은 성서적이며 체험적이다. 동양선교회가 사중복음을 핵심 메시지로 삼았던 이유이다. 초기 동양선교회 사역자들의 공통점은 사중복음, 특히 중생 이후 성결의 은혜를 믿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몸소 체험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메시지는 단지 신학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신학과 체험의 교차 속에 깊이 각인된 영혼의 나이테를 가진 메신저였다. 성결의 은혜는 동양선교회에 지울 수 없는 각인을 남겼던 것이다.
찰스의 아내 레티(Lettie)도 역시 성결의 은혜를 경험했다. “어느 날 …나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내 곁에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성령께서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독대했던 그 체험을 흔들 수 없었다. … 내가 이 간증을 위해 펜을 들었을 때,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예수의 피가 모든 죄에서 나를 정결하게 하셨다’는 증거가 있었다.” 모든 죄에서 정결하게 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전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는 경험이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고 누리는 삶에서,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십자가 삶으로의 대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초기 동양선교회 지도자들은 성결의 메시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성결의 메시지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었다. 한국성결교회가 그 고유의 정체성을 사중복음, 특히 성결에서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찰스 카우만의 성결론은 1921년에 집필된 그의 책, 우리의 옛 사람 또는 우리의 성화를 위한 하나님의 처방전』(Our Old Man or God’s Prescription for our Sanctification)에서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중생은 “첫 번째 은혜의 역사”로서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회심한 자들은 “마음에 선한 원칙”을 가지고 진정한 성결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의 옛 사람은 우리 죄가 용서되어 중생한 이후에도 성령에 의해 정결하게 되어 제거되기 전까지, 그래서 우리가 완전히 성화되기 전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사람은 성화되기 전에 의롭다하심을 받는다. 칭의는 우리를 위해(for us) 행하신 역사이고, 완전한 정결 또는 성화는 우리 안에서(in us) 일하신 역사이다.” 육적인 것은 중생한 자들이 오직 제2의 축복으로 성화되었을 때에 제거되고, 파괴(근절)될 수 있다. 그리고 “‘참된 성결’은 … 단지 ‘우리 계좌에 입금된 것’이나 ‘우리에게 전가된 것’이 아니라, ‘거룩한 본성’이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전해진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삶의 실제를 알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필요성을 아는 자가 누구인가? 거룩한 삶의 능력을 알며, 그것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자가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에게 완전히 굴복된 사람을 통해 얼마나 놀랍고 존귀한 일들을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셨던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