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터지고 총 17번 맞아도 살려주셨네요”
1990년 걸프전부터 7번 참전
한국인 최초 ‘특무상사’ 진급
‘죽었구나’ 했을때 주님 말씀
몸 만신창이 돼도 기적 체험
“저는요, 전쟁터에서 예수님을 만났어요. 매복에 당해서 진짜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이때부터 새 인생을 살고 있어요.”
미 육군 특수부대 ‘델타포스(Delta Force)’ 출신 허요한 장로(하와이갈릴리교회·사진)는 전장을 누빈 전쟁 용사다. 허 장로는 장장 25년을 미군으로 복무하며 아프간을 비롯해 전쟁터에 7번이나 파병을 나갔던 용맹한 군인이다. 올해 62세지만 아직도 우락부락한 인상과 큰 덩치가 현역 군인 못지 않다.
15세에 어머니를 따라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 그는 낯선 땅에서 매일 극심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일상이 되었다.
괴롭힘을 당하다 맞서 싸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스무살을 갓 넘긴 그는 도망치듯 미군에 입대했다. 허 장로는 그곳에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넘치는 체력과 수준높은 사격과 격투 실력 등을 인정받은 허 장로는 미 육군 입대 2년 만에 ‘델타포스’로 영입되어 특수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1990년 걸프전 때 첫 파견을 나갔어요. 훈련도 많이하고 자신감을 갖고 갔는데 전쟁터는 상상 이상으로 참혹했어요. 첫 파견 후에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충격이 컸어요.”
처음 나간 전쟁터에서 땅바닥에 돌멩이처럼 처참하게 버려진 수많은 시체, 탱크와 자동차에 깔려 형언할 수 없는 모습으로 무더기가 되어버린 시체를 직접 눈으로 본 그는 제정신일 수 없었다.
첫 파견에서 말을 잃어버린 허 장로는 귀국 후 정신병원에 입원해 6개월 가량 치료를 받아야할 정도로 피폐해졌다. 하지만 그는 치료 후 다시 군으로 돌아갔고, 제대하기까지 제2걸프전, 사담후세인 생포작전, 파나마제도 침공,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 총 7번의 파병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 심각한 부상도 당하는 고난 속에서도 누구보다 용맹했던 그는 2004년 한국인 출신 미군 최초로 특무상사가 됐다.
“제가 스코필드에 있을 때 한국인 최초로 미군 특무상사가 됐어요. 상사급에서 제일 높은 계급이죠. 정말 말도 안되는 인종차별을 겪으면서도 목숨 걸고 전장을 누비며 많은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룬 공로를 인정받은 거죠.”
세상에 무서운 것도 없고 ‘군의 명령’이 아니면 남의 말도 듣지 않던 독불장군 허 장로는 이때만 해도 신앙에 별 관심없는 미지근한 모태 신앙인이었다. 그런데 2005년 8월 14일 전쟁터에서 예수님이 그에게 찾아오시면서 그의 인생은 또 한번 변했다.
허 장로는 군 생활 24년째 였던 2005년에도 파병을 나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당시 어느 목사님이 이번에 죽을 것 같다며 극구 말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4살, 14살 어린 자녀 둘을 노구의 어머니에게 맡겨두고 이라크로 통산 7번째 파병을 갔다. 이때 허 장로가 하와이로 돌아오기까지 꼬박 18개월 동안 그의 어머니는 교회를 떠나지 않고 성전 안에서 생활하며 매일 그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믿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이라크 북서쪽 에어포스 베이스에서 인근 루트로 정찰을 나갔다가 게릴라들의 매복 공격을 당했다. 정찰 차량 6대가 나갔는데 그 중 가장 높은 계급인 허 장로의 차가 정차할 곳에 폭탄을 매립해두고 터트린 것이다. 차에서 내린 직후 터진 폭탄에 허 장로는 멀찍이 날아갔다고 한다.
허 장로는 “정신을 차려보니 한쪽 귀가 안들리고 척추가 부러져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나마 즉사하지 않은게 다행이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반신은 마비되고, 한쪽 귀는 들리지 않는 상황에 적들의 총탄이 비오듯 쏟어졌지만 허 장로는 부대원들부터 챙겼다.
평소 그는 입버릇처럼 “나는 전쟁의 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나중에 나오겠다. 절대 나보다 너희가 먼저 죽게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그의 부하들은 이런 소신대로 행동했던 그를 잘 따랐기에 그 믿음을 져버릴 수 없었다고 했다.
허 장로는 “이대로는 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지원이 올 때까지 다른 대원들은 뒤편에 떨어진 건물로 피신시켰다”며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떠올렸다. 하반신은 마비됐지만 상체는 쓸 수 있었기에 그는 “총알받이가 되겠다”는 각오로 탱크에 기어올라가 기관총을 잡았다.
기관총은 ‘영점’도 맞지 않고, 어느새 어두워져 불빛 한자락 없이 싸워야 했지만 특등사수였던 그는 게릴라들의 총구에서 나오는 불빛을 보고 ‘부대원들을 반드시 살려 보낸다’는 의지로 총을 쐈다. 물론 그도 죽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그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된다.
“진짜 나는 여기서 죽는구나 싶었는데, 가슴 속에서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하는 말씀이 울렸다”는 허 장로는 “당시에는 이게 뭐지? 싶고, 잘못 들었나 했는데, 이번엔 귓가에서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계속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적들과 대치하는 그곳에서 구름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글귀가 보였다. 마음에서 울리던 그 말씀이 이젠 글로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 “포화 속에서 갑자기 고요함을 느꼈고, 눈에 보이는 말씀을 읽어내려가니 마지막에 여호수아 1장 9절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는 진짜 예수님이 나에게 하는 말씀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죽는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고 했다. 홀로 대치한지 30분쯤 지나자 헬리콥터와 지원군이 도착해 적진에 집중 포화를 쏟아부어 부대원 모두가 살 수 있었다.
이때 허 장로는 총알을 17발이나 맞았는데, 1개는 헬멧에 16발은 방탄복에 맞아 구사일생으로 살았다고 했다. 그렇게 상처뿐인 몸으로 부대로 복귀한 그는 당장 성경책부터 찾았다. “그때는 내가 살아았다는 기쁨보다 궁금함이 더 컸다”는 허 장로는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을 찾아봤고,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성경말씀임을 확인했다”고 고백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하와이로 돌아온 허 장로는 병원에서 척추 2, 3번이 골절되고 5번이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고 6개월을 치료받은 후에야 걸을 수 있게 됐다.
이 사건을 끝으로 군에서 제대한 그는 이후로는 신앙에 매진해 살고 있다. 아직도 몸과 마음에 치유가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의 기적같은 삶과 더 기적같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간증하며 예수를 전하고 있다.
허요한 장로는 “예수님이 저를 살려주시고, 제게 감동으로, 소리로, 형상으로 말씀과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알고 경험한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재키 카오후 목사님이 꿈꾸는 신학교 사역을 함께 이뤄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