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를 산탄이 아니라 직격탄이 되게 하라고? 필자가 이전 회에 강조한 이 말에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설교자들이 있을 것이다. 본문의 핵심을 꼭 집어 명료하게 전하고 싶어도 막상 설교 준비를 위해 본문을 펴서 읽다 보면 이 구절 저 구절이 눈에 들어오고 이 말씀도 하고 싶고 저 말씀도 하고 싶어서 모두를 끌어 안다보니 결국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지 핵심을 잡기 힘든 설교를 하는 경우들이 있다.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형국이다. 비유하자면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가서 음식들을 맛보며 ‘이것도 맛있다’, ‘저것도 맛있다’며 감탄을 쏟아내던 사람이 모든 음식을 한 그릇에 쓸어 담아 넣다보니 각 음식들이 원래 가졌던 맛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잡탕으로 만들어 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 설교자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너무 많은 내용을 다루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만 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다. 더구나 구술된 말은 듣고 나서 되짚어 볼 수 없어 반복 학습을 통한 기억도 어렵다. 만약 복잡한 구문에 어려운 내용을 설교한다면 열심히 들으려 하는 청중이라도 겨우 몇 마디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설교는 몇 마디로 정리될 수 있는 설교이다. 

설교자가 성경을 읽으며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청중에게 공급할 다양한 내용을 갈무리하여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이다. 해돈 로빈슨은 그것을 본문의 중심사상이라고 하고, 토마스 롱은 본문의 초점이라고 한다. 본문의 중심사상 혹은 본문의 초점을 설교의 주제문으로 만드는 것이 들리는 설교를 위한 첫 번째 작업이다. 본문의 핵심을 간명하게 표현하는 문장, 짧고 명쾌한 문장, 함축적이면서도 기억하기 좋은 문장–이런 조건을 가진 한 문장으로 설교의 주제문을 만들어야 한다.  

물방울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돌에 구멍을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는 말을 기억하라. 물방울같이 연성의 물질이 돌처럼 단단한 물질에 구멍을 낼 수 있는 이유는 하나의 포인트에 지속적으로 충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설교가 하나의 명확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면 강렬한 메시지가 아니라도, 목이 터져라 외치는 설교가 아니라도, 청중의 돌 같은 마음에 성령의 바람이 통할 구멍을 낼 수 있다. 탁월한 설교로 단번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성실하게 끈기있게 분명한 초점을 가진 메시지를 전한다면 바뀔 수 있다. 

풍성한 설교보다 분명한 설교가 낫다. 본문 연구를 위해 여러 주석서를 책상 가득 펴놓고 좋은 말들을 모으려 하기보다 자신의 눈으로 본문을 깊이 있게 묵상한 후 신뢰할 수 있는 주석서와의 대화를 통해 본문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를 명명해야 한다. 청중의 상황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폭넓은 인문학적인 지식을 드러내는 설교보다 청중이 마치 ‘나 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설교, 적용점이 분명한 설교가 더 힘이 있다. 본문으로부터 핵심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교자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게 되고 본문은 설교자가 하려는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 이곳저곳에서 근거 본문들을 가져오고 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인지 오리무중이 되고 설교는 본문 이곳저곳을 배회하다가 명확한 결론도 없이 마무리되어 버릴 수 있다.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가 결국 아무 이야기도 못하고 끝나버리는 것이다. 복음은 단순한데 설교는 복잡하게 하는 이유는 설교자가 본문을 듣지 않기 때문이요, 설교자의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먼저 본문으로부터 들으라. 그리고 들은 것은 한 문장으로 쓰라. 성경적 설교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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