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수 목사가 1997년부터 사역
성전 건축 스트레스 끝 작년 소천
사위가 이어받아 금산교회서 개명
빚만 10억이지만  성도 차츰 늘어
“젊은 세대 유입 늘어나리라 기대
 홍보 다양화, 은혜나누는 쉼터로”

인천서지방 미단시티교회(구 금산교회)는 1989년 영종도에서 유일한 성결교회로 설립된 후 가난한 시골교회를 벗어나지 못했다. 1997년 고 조경수 목사가 부임한 후 재건축의 바람을 타고 종교부지를 받았지만 조 목사는 지난 해 성전을 건축하던 중 ‘스트레스성 급성 신장염’으로 소천했고 그가 꿈꾸던 새 예배당에서의 부흥의 꿈을 지금은 사위 박현석 목사와 성도들이 이어가고 있다. 영종도에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인 미단시티교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34살의 청년 목회자, 광야의 길로 들어서다
박현석 목사는 서울신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마친 전도유망한 목회자다. 30대 중반에 박사학위까지 마친 그는 탄탄한 미래를 꿈꿨다. 박현석 목사는 “많은 목회자들이 그렇듯이 저도 중대형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이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 사역하고 싶었다”며 “이를 위해 스무살 때부터 신학을 공부하면서 목회자가 되기 위해 훈련받고 박사가 되어 교단의 중대형교회 목회자로 청빙받기를 바랬었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삶이 바뀐 것은 장인 조경수 목사의 죽음이었다. 조 목사는 1997년 금산교회에 부임한 후 교회 건축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부임 후 20여 년간 제대로 된 사역비도 받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했던 조 목사의 죽음은 박 목사가 인생의 방향을 바꿀 정도로 큰 울림이 되었고 그의 뒤를 이어 금산교회에 부임하게 된 것이다.

 

세습? 빚만 10억인 미자립 개척교회
장인이 사역하던 교회에 부임했지만 세상이 말하는 세습과는 거리가 멀다. 건축비로 인한 빚만 9억 6000만원에 교회 운영비로 쓴 마이너스 통장에는 4500만원의 빚이 따로 있었다. 오랜 기간동안 재건축에 매달리느라 성도라고는 거의 가족들만 남아 사례비는 꿈도 꾸지 못했고 목회자를 위한 사택도 마련하지 못해 교회에서 온 가족이 생활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영종도 미단지구가 재개발되어 크게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와 다르게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개발이 완성되지 못해 이전보다 나은 형편이라고 볼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대단지 아파트도 시행사와 주민들간의 갈등으로 입주가 미뤄지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도 많았다.

 

녹록치 않은 환경, 그럼에도 은혜가 있다
박 목사가 이런 환경을 감수하고 교회 부임을 결정하게 된 것은 장인의 사역을 옆에서 지켜본 지인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수십년간 금산교회 하나만을 바라보며 헌신했던 장인의 삶을 아는 박 목사로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부르심이었다.

박 목사는 “장인어른 장례를 치루면서 몇몇 분이 ‘사위인 네가 조 목사님의 뜻을 이어갔으면 한다’고 제안하셨다”며 “장례 후 기도하면서 ‘이곳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장인어른의 뜻을 이어가야 한다면 그게 내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부임을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박 목사에 따르면 조 목사의 소천 후 사망보험금으로 9000만원이 나왔는데 가족들은 그것마저 교회 빚을 갚는데 헌금했다. 막내가 올해 스무살이기 때문에 학비와 생활비로 사용해도 어느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었지만 교회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아버지의 뜻을 기억하고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조 목사와 가족의 결정을 보면서 사위였던 박 목사가 그의 뜻을 이어가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마음으로 헌신을 결심하고 지난 해 9월 부임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당장 생계부터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전 사역지에서 부목사로 있을때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사택에서 살았지만 이젠 사택이라고 할 공간이 없어 교회 한켠에 살림살이를 우겨넣었다. 오르간을 연주하던 조한나 사모는 공장에 다니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스무살 때부터 신학만 공부하며 사역만 했던 박 목사도 단기 아르바이트 등으로 사역비를 마련했다.  

건축된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많았다. 금산교회는 2018년 11월에 1층, 2021년 2층과 3층을 준공한 새 건물이지만 곳곳에서 하자가 발생했다. 철골과 기초공사만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지었을 뿐 대부분을 조경수 목사가 직접 마감해서 생긴 하자였다. 건축한지 3년도 되지 않은 건물이지만 여러 곳에서 비가 새고 아직 내부 인테리어도 마치지 못한 상황이다. 건축비가 부족해 사람을 부르지 못하고 조 목사가 직접 공사를 마무리한 탓이었다. 다행히 최근 서산교회(김형배 목사)에서 공사비를 지원해줘 비가 새는 곳의 보수공사를 진행 중이지만 내부 기둥이 녹스는 등 아직 손봐야 할 곳이 많다.

그럼에도 박 목사는 은혜와 감사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고백했다. 비록 비가 새고 고칠 곳이 많지만 교회 곳곳에 남겨진 장인의 흔적을 보며 그의 헌신에 은혜를 받는다. 성도가 거의 없어 조용하기만 했던 예배당에 사모 친구들이 찾아와 매주 예배를 함께 드리면서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고 있다. 조용히 박 목사를 찾아와 기도해주고 선교비를 몰래 두고 가는 사람들을 통해 은혜를 경험하고, 보수공사를 통해 교회가 조금씩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하다라는 말이 입에서 나온다.

 

미단시티교회로 이름 바꾸고 도약 다짐
박현석 목사는 부임 후 교회 이름을 금산교회에서 미단시티교회로 바꿨다. 영종도의 미단지구를 품고 지역의 복음화를 꿈꾼다는 의미이다. 교회 평생 표어도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로 결정했다. 교회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이 복음 안에서 든든히 서가고 평안한 삶을 살아가기룰 바란다는 뜻이다.

교인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처음 부임했을 때는 주로 가족들만 예배를 드렸지만 최근에는 몇몇 부부가 예배에 참석하면서 조용했던 예배당에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시끌벅적해진 것이다. 

교회 재정도 이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박 목사 부임 당시 4500만원에 달하던 마이너스 통장은 어느 새 플러스가 되면서 미약하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또 열악한 환경이지만 서울신대와 기아대책 등 국내 4곳, 4명의 해외 선교사를 후원하는 등 국내외 선교에도 힘쓰고 있다.

박 목사는 “여유가 있어서 선교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해도 나눌 수 있는 교회가 되고 싶다”며 “아주 적지만 우리의 관심과 기도가 선교라는 마음으로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3040 세대와 평생 함께하는 목회 꿈 꿔
박 목사의 꿈과 비전은 확고하다.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인 3040 세대들과 평생 함께하는 목회를 꿈꾸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전도해서 큰 교회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 보다 적은 이들이 모여도 함께 마음을 나누고 늙어가며 평생을 같이하는 목회다.

그는 “작은 교회, 특히 우리와 같은 개척교회는 빨리 사람들을 전도해서 예배당을 채워야 한다는 조급함이 들기 쉬운데 제가 생각하는 교회 상은 나와 비슷한 또래에게 복음을 전해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목회를 꿈꾼다”며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아우루는 목회, 이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목회는 큰 교회가 감당하면 된다. 저는 소수의 사람이라도 누구든지 ‘평안하며 든든하게 서가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현재 영종도에는 30~40대 인구가 늘면서 박 목사의 꿈처럼 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영종도는 중구에 소속되어 있는데 2026년이면 영종구가 되고 제3연륙교가 생기면서 외부 유입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어 입주가 시작되면 30~40대를 타겟으로 하는 전도 방법도 구상 중이다.

박 목사는 “진행중인 교회 보수작업이 끝나면 교회 이름과 로고를 제작해 주변에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홈페이지와 유튜브 등을 개설해 입주자들이 교회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할 계획”이라며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서 쉼을 누리고 복음의 은혜를 나누는 교회로 세우고 싶다”는 바램을 전했다. 

장인인 조경수 목사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세운 영종도의 미단시티교회에서 복음의 새 바람을 일으킬 박현석 목사의 비전과 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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