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르게네프의 명성 탓일까, 우리시대는  햄릿과 돈키호테 를 읽지 않았으면서도 사람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분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햄릿형은 자신의 자아까지 의심하며 행동이 사라져버린 창백한 지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반대로 돈키호테형은 생각하는 것 보다 행동이 앞서는 어릿광대로 묘사되어 터무니 없이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두가지 부류로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돈키호테에 대해서 어릿광대적이라는 또, 터무니없이 저돌적이라는 이해를 거부한다. 그에 의하면 돈키호테는 터무니없이 저돌적인 인물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제물로 던지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가세트는 돈키호테 성찰 에서 ‘돈키호테는 신성하고 고독한 그리스도의 슬픈 패러디’라고까지 했다. 그렇다고 해도 돈키호테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오늘도 부르짖으며 묻는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면 누가 제 정신일 수 있겠소?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짓이오!’ 인간의 비열함과 간악함, 탐욕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고발을 감행한 도스토예프스키가 돈키호테를 향해서는 고개를 숙였다. “지구의 종말이 찾아와 그분이 우리에게 너희는 지상에서의 삶을 이해했는가? 그 삶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는가 물으면 우리는 묵묵히 돈키호테 를 내보이며, 여기 삶에 대한 우리의 결론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정신나간 소리하는 것일까.

▨… 우리에게 평균의 마음 으로 돈키호테를 소개하는 이수은이 간추려 주었다. “모든 현대인은 자기 삶에 대해서 얼마간은 돈키호테적이다. 한 치 앞을 모르면서 계획을 세우고 이뤄지지 않을 무수한 헛꿈을 꾼다. 가끔 뭔가에 도전해보지만 조금 안 됐다고 금세 포기하거나 이상한 데 꽂혀서 망할 때까지 버틴다.” 결국, 우리는 모두 돈키호테라는 것이다.

▨… 국회의원 선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우리 성결인들이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성결교단에서도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벌어질 모양새다. 돈키호테를 조롱하던 멀쩡한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서 몇 명이나 돈키호테로 변할까. 아니, 입후보한 현명하신 분들이 라만차의 기발한 신사 돈키호테이시라면 자신이 제물이 되는 잔치를 벌여야 하지 않겠는가. 진짜 돈키호테가 산초 판사와 춤추는 선거판을 꿈꿔서는 안되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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