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왠지 가슴이 설렌다.  올 한해는 왠지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러 가지의 바람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 그중에서도 늘 그래왔듯이 가족의 건강과 저마다 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어찌 이 바람이 나 혼자만의 마음이리요. 모든 사람들의 새해를 맞아 간구하는 바람이 아니겠는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책상 위에 놓여있는 2023년 계묘년의 끝자락인 12월 달력이 온갖 몸부림을 치며 하루하루의 아쉬움을 더하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달력에 하루하루 꼭 해야 할 일을 꼼꼼히 적어놓아 아침에 출근할 때 한 번씩 다시 보고 현관을 나섰던 그 메모장인 달력이기에 얼마나 정이 들었겠는가. 마침내 섣달그믐날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달력과 이별을 고해야 한다고 하니 가슴이 무척 저려왔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해도 생각해 볼수록 하나님께 감사하기 그지없다. 남들 보기에는 어떠한지 모르지만 먼저 온 식구들이 건강했고, 저마다 하는 일들이 별 탈 없이 잘 마무리 되었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삶의 애환을 누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의 말대로 “가장 행복한 날은 하루하루의 평범한 날이다”라고 한 말이 다시 한번 가슴을 저리게 한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불현듯 뇌리를 스친다. 내가 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쯤 되었을 때 일상이 너무나 단조로워서 지겨웠던 적이 있었다. 삶의 의욕마저 바닥을 치는 기분이랄까, 삶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감 없이 흐르는 시간을 떠나보내는 나의 일상생활에는 행복도 감사도 없었다. 우중충한 시카고의 날씨처럼 마음에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 채 최소한의 의무감으로 살아가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날 심방 예배를 드리러 교인 가정에 아들을 데리고 갔다. 그런데 아들이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집의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 카펫 위에 떨어진 이쑤시개가 아들 발에 박혀 버린 것이다. 

당장 병원으로 가서 X-레이 촬영을 하고 기다렸지만, 이쑤시개는 잘 보이지 않아 대강 치료만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 상태를 지켜보자 하고 다음 날 학교에 보냈는데 하교 후 집에 들어서는 아들의 발을 들어보니 부을 대로 퉁퉁 부어오른 것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를 차에 태우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마침내 큰 병원에 가서 MRI 촬영을 통해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하여 완쾌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일상의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가슴 깊이 깨달았다. 참으로 우리네 삶의 무탈한 하루가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느꼈다.

그렇다. 한 해를 시작하는 2024년 올해도 나는 큰일을 감당하는 사람처럼 엄청난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아주 소박한 바람이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 작은 일이지만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이 소박한 옅은 바람도 혼자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가 없다. 여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루어 가야 한다. 

여기에 섬김과 배려가 녹아져 있어야 한다. 작게는 가정에서, 나아가 교회공동체에서, 사회공동체에서 서로 나누어 섬길 때 구성원의 어깨는 가벼워지고 웃음꽃은 피어날 것이다. 

행복은 누가 어느 순간에 기적처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나 자신부터 몸에 배어있는 쓸모없는 아집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들어 그들로부터 지혜를 배워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한 옅은 바람은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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