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나의 못난 모습을 철저하게 
볼 수 있을 때, 그때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모습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의 춤을 추는 일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춤으로 표현하여 하나님을 높일 수 있다면, 그 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훌륭한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춤을 추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춤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2장을 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또 한 사람의 춤이 나옵니다. 

창세기 32장에 나타나 있는 야곱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 씨름을 하고 환도뼈가 부러진 상태지만,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이름을 얻었고 문제를 해결한 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굴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자로서, 비록 환도뼈가 부러져 다리는 절룩거리지만, 그의 얼굴에는 하나님을 향한 감격과 기쁨이 가득찬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한 곳을 '브니엘'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였으나 생명이 보전된 것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브니엘에서 환도뼈가 부러져 다리는 절룩거리며 주춤거리지만,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감격이 복받쳐 그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 이것을 야곱의 춤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춤을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기쁨과 감격을 표현하는 야곱의 춤이 곧 우리의 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기 전까지 야곱의 삶은 경계인의 삶이었습니다.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었지요. 먼저는 장소의 경계인이었습니다. 얍복강을 앞두고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야곱은 철처히 경계인이었습니다. 아비의 집인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얍복강 씨름은 장소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씨름이었습니다. 또한 야곱은 시간의 경계인이었습니다. 얍복의 밤이 새어 해뜨기 전 여명의 시간까지 야곱의 죽음과 삶의 시간의 경계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은 생사의 경계인이었습니다. 즉 죽고 사느냐가 결판나야 할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철저히 외로웠고,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경계인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경계인으로 있는 한, 외롭고 고독하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때가 하나님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왜 경계인으로 서 있는 시간이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시간일까요? 철저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기득권을 포기한 상태, 비워져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자기 포기’ ‘내려 놓음’이 십자가를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내 삶의 모든 것을 내려 놓게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을 비우게 되었을 때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시간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씨름을 걸어 오십니다. 가장 날카로운 질문으로 나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시고, 왜 이렇게 혼자 남게 되었는지를 묻습니다. 야곱의 씨름은 바로 이와같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너무 아픈 부분이고, 트리우마를 건드리고 들어오는 질문이었기에 상대하기 싫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 질문은 야곱이 현재 혼자 남은 이유를 묻는 것이기에, 고민하고 아파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정리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씨름 씨름하다가, 야곱은 살기 위해서 씨름을 걸어오시는 분께 전적으로 의지해야겠다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씨름의 과정에서 느꼈을 것입니다. 어짜피 죽을 목숨인데, 나의 상처를 드러내시며 씨름 걸어오시는 분이라면 나에게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 씨름의 목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실체를 깨닫고 고백하게 하며, 하나님만을 의존하게 하려함이 목적인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결국 자신의 실체를 야곱이라고 고백한 야곱은 씨름한 자에게 한 대 맞으며 환도뼈가 부러졌지만, 이름을 바꾸어 주시는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시간이 있습니다. 홀로 남아서,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나의 못난 모습을 철저하게 볼 수 있을 때, 그때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시간입니다. 일이 떠나가고, 사람이 떠나가며, 돈이 떠나는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비워진, 홀로 있는 시간입니다. 이때가 하나님과 씨름할 때이고, 이때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때입니다. 탕자의 고백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야곱은 승리자가 된 패배자입니다. 이 역설이 야곱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끝낸 후, 세상적으로는 참 아둔한 몸짓, 그리고 멋없는 춤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춥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승리자라는 칭호를 주셨기에 출 수 있는 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2024년 한해! 야곱의 춤을 출 수 있는,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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