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에 의하면, 2천여년전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첫번째 성탄일에는 수많은 천군이 천사들과 함께 부르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찬송이 울려퍼졌다.(누가복음 제2장) 그러나 2024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교회가 자리하고 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교회가 한 도시 안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

▨… 아파트 3층을 삼킨 불이 4층으로 번졌다. 두 살과 7개월 된 두 딸의 젊은 아빠는 작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4층에서 뛰어내렸다. 이제는 뛰어내린 그 마음을 물어볼 길도 없지만 아이는 살았고 젊은 아빠는 생명을 잃었다. 이 젊은 아빠는 아이를 품에 안으며 그 황망할 수밖에 없는 찰나의 시간에 무엇을 생각했을까. 불을 낸 사람을 원망했을까, 어떻게하면 아가와 내가 무사하게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을까를 궁리했을까.

▨… 아닐 것이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이라는 천륜이 무너지고, ‘가나안 교인’이라는 명패를 무슨 자랑거리처럼 내세우는 신앙풍토라 할지라도 제도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존중하는 신앙의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던질 때만 아기를 살릴 수 있음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렇다. 그 젊은 아빠는 아기를 덮치는 죽음의 그림자를 깨뜨리고 살려내라는 부르심의 목소리를 그 순간 들었으리라. “네가 생명을 버리므로만 네가 사랑하는 자는 살 수 있다!”

▨… 그 부르심의 목소리가 바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가복음 제15장)하고 크게 소리 지르셨던 예수님의 비명에 담겨 있었다는 것을 그 젊은 아빠는 알았을까,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외침은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제14장)의 말씀이 절대적 기반이었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립보서 제2장)는 부르심의 의미를 깨우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 복음은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살려내신다는 하나님의 약속, 바로 그것이다. 마치 젊은 아빠의 죽음이 7개월된 딸을 살려내었듯이…임석웅 제117년 차 총회장은 “오늘의 풍요로움과 부요함이 자랑이 아니라 한없는 부끄러움으로 느껴질 뿐”이라고 총회장 신년목회서신에서 밝혔다. 이 고백이 모든 성결인 목회자들의 부끄러움으로 깨어날 때 성결교회는 성결교회다움을 회복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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