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힘을 뺄 수 있습니까? 
사랑하면 힘이 빠집니다 
하나님은 힘을 뺀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알약을 먹을 때마다 목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분 있습니까? 약을 먹는다는 생각에 목에 힘이 들어가 식도가 좁아져서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 분은 약을 먹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물을 마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힘이 빠지고, 두세 개의 알약도 쉽게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스포츠에도 적용됩니다. 수영을 배우면, 수영 강사에게 듣는 말이 있습니다. “힘을 빼세요.”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겨야만 수영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는 골프에도 적용됩니다. 초보자들이 골프를 칠 때, 과도하게 힘을 주면 뒤땅을 칩니다. 
드럼을 칠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박자를 정확하게 맞추기도 힘들고, 조금만 연주해도 피곤해집니다. 힘을 빼면 정확한 박자에 맞추어 오래 연주할 수 있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도 배에는 힘을 주어야 하지만, 목에 들어간 힘은 빼야 합니다. 목에 힘을 주면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대인관계도 힘을 빼야 합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사랑했지만, 결혼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존심에 모르는 척, 안 그런 척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갑순이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습니다. 갑돌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갑돌이는 을순이와 결혼했고, 갑순이는 을돌이와 결혼했는데, 두 부부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을순이와 을돌이가 갑돌이와 갑순이를 대할 때 힘을 뺏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져주고 배려하니까 다른 사람도 마음이 편해지고 넉넉해지고, 행복해진 것입니다. 한 사람만 힘을 빼도 행복해진다면, 두 사람 모두 힘을 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문제는 많은 부부가 힘을 빼지 않아서 천국을 경험해야 하는 가정에서 지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최승호의 ‘오징어 부부’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 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그 오징어 부부는 싸울 때 서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 
그 오징어 부부는 다리가 뒤엉킨 채 징하고 징그러운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 오징어는 죽을 때 혼자 다리로 얼굴을 감싸고 울지 모른다. 
눈이 축구공만한 대왕 오징어는 길이 9미터의 허무를 끌고 캄캄한 심해의 고요 속을 돌아다닌다. 


오징어 부부가 왜 이렇게 삽니까? 부부 사이에 힘을 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힘든 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김소운의『목근통신』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떡집 주인이 사무라이를 찾아왔습니다. 사무라이의 아들이 떡을 훔쳐 먹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들은 먹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무라이는 칼을 들어 아들 배를 갈랐습니다. 떡이 나오지 않자 사무라이는 떡집 주인의 목을 치고 자기 배를 그어 자결했습니다.

이긍익의『연려실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종이 아꼈다는 조선 시대 문인 재상 윤회가 젊어 여행길에 올랐을 때 일입니다. 여관 주인이 “방이 여의치가 않다”하여 윤회는 뜰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인의 아이가 진주를 갖고 놀다가 떨어뜨렸고, 곁에 있던 거위가 진주를 삼켜 버렸습니다. 주인은 윤회를 의심하여 묶어두고, 날이 밝으면 관아에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윤회는 “저 거위도 내 곁에 매어두라” 고 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거위 뒷구멍에서 진주가 나왔습니다. 주인이 “어제는 왜 말하지 않았소?” 묻자 윤회가 말했습니다. “어제 말했다면, 주인장은 필시 거위 배를 갈라 구슬을 찾았을 것 아니오.” 

사무라이는 힘을 빼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의 배를 갈랐습니다. 이 일로 떡집 주인을 죽였고, 자신도 죽었습니다. 반면 윤회 선생은 도둑으로 오해받는 것이 괴로웠지만 힘을 뺐습니다. 한밤을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자신은 물론, 거위의 목숨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힘을 빼지 못한 사람을 외면하십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모세가 화를 내며 반석을 쳤을 때, 그는 평생을 소원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사울 왕이 전쟁에 나갈 때,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렸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인도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가 약속된 시간에 오지 않자, 사울 왕은 자신이 직접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사무엘 없으면 예배를 못 드리나? 내가 인도하면 될 것 아니야’라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힘을 빼야 할 자리에서 힘이 들어갔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반면 다윗은 힘을 뺐습니다. 자신을 도망자로 만든 사울 왕에게, 복수할 자리에서 힘을 빼고 사울 왕을 생명을 아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지켜주셨고, 이스라엘 왕국을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힘을 뺀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힘을 뺄 수 있습니까? 사랑하면 힘이 빠집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타국 땅으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 많은 재산을 다 허비하고,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탕자를 보고 측은히 여겼습니다. 혼내야 할 자리에서 꾸짖지 않고 힘을 뺐습니다. 안고 입을 맞추고 새 옷을 입히고, 새 신을 신기고, 손에는 가락지를 끼워주었습니다.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했기에 자존심을 내려놓았습니다. 반면 큰아들은 달랐습니다. 동생을 위한 잔치가 열렸다는 사실에 화를 냈습니다.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달래러 온 아버지에게 항변합니다. 그이 태도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습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눅 15:29~30). 

큰아들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틀린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큰아들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만 힘이 들어갔습니다. 큰아들은 힘을 뺄 수 없었고, 동생을 위한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새해에는 작년보다 더 힘을 뺍시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아니라, 을돌이와 을순이로 삽시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힘을 빼면 부부 사이가 천국이 됩니다. 부모가 자녀 앞에서 힘을 빼면 가정이 천국이 됩니다. 목사와 장로가 힘을 빼면 천국 당회가 됩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가 힘을 빼면 교회가 천국이 됩니다. 국회의원이 힘을 빼면 나라가 천국이 됩니다. 

우리 모두 새해에는 힘을 빼서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 행복한 나라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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