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출출하거나 밥을 먹기 싫을 때 가끔 라면을 끓여 먹는다. 따뜻한 보리차가 그리울 때는 팔팔 끓는 물에 보리차 티백을 넣어서 잘 우러날 때까지 기다린다. 라면을 넣거나 보리차 티백을 집어넣기 전에 항상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다. 물이 제대로 다 끓었는가? 끓지 않은 물에는 아무리 맛있는 라면이라도, 아무리 새로 볶은 보리차 티백을 넣어도 소용이 없다. 반드시 끓는 물에 라면과 보리차 티백을 넣어야 맛이 난다. 물은 100°C에서 끓는다. 몇 번에 걸쳐서 20°C가 되었다고 해서 끓는 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100°C가 되어야 물은 끓는다. 

80°C를 계속 유지해도 그것은 끓는 물이 아니다. 단지 따뜻한 물이다. 따뜻한 물로는 라면도 못 끓이고 차를 우려내기도 힘들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이 끓는 순간이 되어야 영적인 깊이가 생긴다. 내 마음과 영혼이 끓어야 은혜가 넘치는 기도의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 

신앙생활하면서, 특히 기도시간에 100°C가 안 되는 생활을 할 때가 많다. 개인 기도시간에 잠시 몇 분 자리에 앉았던 것으로 기도했다고 말할 수 없다. 잠시 자리에 앉는 것을 10번 반복했다고 내 기도가 끓는 것은 아니다. 한자리에 오랜 시간 앉아서 내 가슴이 끓고, 내 눈물이 끓고, 내 모든 생각이 뜨겁게 끓어올라야 깊은 기도를 체험하게 된다.

신학생 시절 군대에서 제대하고 새로운 신앙과 새로운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하기 위해 기도의 결단을 하였다. 애타는 마음으로 손을 불끈 쥐고 새로움으로 변화되고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스스로 만족한 마음으로, 후련한 마음으로 기도실을 나오며 시계를 봤다. 겨우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개인기도 시간이 도무지 30분을 넘지 못했다. 처음에는 낙심도 되고 내가 이렇게 집중력이 약한 사람이었는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결단코 하나님을 깊이 만나리라는 의지로 2주간을 지속하니 기도시간이 1시간을 넘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2시간도, 3시간도 한 자리에서 기도할 수 있는 영적체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기도가 끓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경험을 통해 기도도 어떤 순간이 지나야 뜨거움에 도달하고 끓어오르는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은 100°C에서 끓어야지만 여러모로 소용이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기도생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안에서 끓는 시간이 없으면 우리의 죄악도 씻어 낼 수 없고 깊은 영적 체험과 은사도 받을 수 없다. 깊은 기도, 뜨거운 기도, 끓어오르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영혼은 순도 높은 물처럼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인생을 점수로 계산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신앙과 인생을 점수말고 온도로 계산하고 싶다. 

우리의 기도와 신앙이 100°C가 되도록 하자. 사람 사랑하는 마음이 100°C가 되길 기도하자, 전도와 선교를 100°C로 하자. 당신은 지금 몇 점 인생이 아니라 몇 도 인생을 살고 있는가?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