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알면 쉽게 해석될 것을 몰라서 곤욕을 치루고 그 과목을 멀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부분은 성경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면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극피동물, 강장동물, 이런 말들을 들어는 보았어도 확실히 그 개념을 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자를 알면 너무나도 쉽게 해석되는데 양서류(兩棲類 두 양 깃들일 서 무리 류)이다. 그러니까 물에서도, 뭍에서도 활동하는 동물을 말한다. 그 대표가 개구리이다. 파충류(爬蟲類 긁을 파 벌레 충 무리 류)는 긁는 벌레들이란 뜻으로 뱀이 대표적이다. 뱀은 기어가는 것 같아도 땅을 긁고 있는 것이다.
포유류(哺乳類)는 먹일 포 젖 유자를 쓴다. 사람과 고래가 포유류이다. 즉 젖을 먹여 키우는 동물이란 뜻이다. 사실 고래는 젖을 먹이는 줄 몰랐다. 고래가 포유류에 포함되는 것을 보고 젖을 먹여 키움을 금방 알 수 있다. 극피동물(棘皮動物)은 학교 다닐 때 많이 들어본 동물 이름이다. 무슨 동물이 극피동물인가 물으면 쉽게 대답할 자 몇일까? 그러나 한자를 알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한자는 가시 극 가죽 피로, 가죽(몸 표면)에 가시가 나 있는 동물을 말한다. 해삼, 불가사리, 멍게 등이다. 너무나도 쉽다. 강장(腔腸)동물은 속빌 강 창자 장이다. 창자가 빈 지렁이 같은 존재를 강장동물이라한다. 성경에도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창세기(비롯할 창, 세상 세-‘세’자는 뜻이 열 네가지)는 세상이 비롯될 때 쓴 기록이란 뜻으로, 글자 그대로다. 애매한 것 하나가 신명기(申命記)이다. 신(申)자 성을 가진 자에게 물으면 모두가 ‘납’ 신자라고 한다. 여기서 ‘납’은 잔나비(원숭이)의 옛말이다. 잔나비를 줄여 ‘납’이라 한다. 즉 납은 원숭이다. 신(申)은 아홉 번째 간지(干支)이다. ‘신’자가 들어가면 원숭이띠가 된다. 갑신(甲申), 을신(乙申), 병신(丙申) 등 신자는 원숭이띠란 얘기다. 본(本)은 평산(平山) 또는 어디다 하더라도 훈(訓)은 ‘거듭’ 신이다. 두 번째라는 뜻을 지닌다.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에서 그리고 신명기 5장에서 나온다. 출애굽기 20장은 출애굽한 1세대를 향하여 준 계명이라면 신명기 5장은 1세대는 죽고, 1.5세대 또는 2세대에 준 계명이다. 그래서 ‘거듭 명령하여 쓴 글’이 신명기(申命記)이다.
레위기서 5장에 나오는 속건제(贖愆祭)는 무엇인가? 속죄제(贖罪祭)와 차이는 무엇인가? 愆(허물 건)자를 알면 쉽게 해석이 될 것이다. 또 선과 악도 기가막힌 뜻이 숨어 있다. 선은 일반적으로 선(善)이라고 쓴다. 그러나 전서(彖書)를 보면 그 뜻이 확연히 드러난다. 양(羊)을 가운데 두고 말씀 언 자 두 개가 들어가 있는 글자가 원 ‘선’자이다.
어린양(Lamb)은 요 1:29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한다. 예수를 뜻한다. 양을 예수라 지칭하는 곳은 여러 곳이 있다. 즉 善이란 오른쪽 신약과 왼쪽 구약의 말씀을 함께 행하는 것이 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악(惡)은 버금아 밑에 마음 심 자이다. 버금은 둘째라는 뜻이다. 즉 마땅히 첫 번째 먹을 마음을 둘째로 먹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땅히 일번으로 사랑해야 하고 우리교회, 우리아내, 우리가정, 우리나라를 마땅히 먼저 사랑해야 하는데 두 번째나 또 그 다음에 먹는 마음이 악이다. 글자에서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다. 영어에서도 그 뜻이 잘 나타나 있다. ‘Deuteronomy’에서 Duo는 두 번째의 뜻이다.
계시록(啓示錄)의 글자는 기가막힌 글이다. 계시록 할 때 啓(계)는 열 ‘계’, 보일 ‘시’, 기록할 ‘록’ 이다. 啓(계)자는 우리가 직접 여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열어주는 것을 말한다. 직접 여는 것은 개(開)자를 쓴다. 示(시)도 보여지는 글자이다. 직접 보여지는 것을 말 할 때는 視(볼 시)이다. 누군가가 보여줄 때 示를 쓴다. 즉 하나님이 보여 줄 때만이 보여지는 것이다.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기지 않는다. 그 분께서 믿음을 주셔야 믿어진다. 한자를 알면 성경도 쉽게 해석이 되는데 이 글자를 외국 문자로 취급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나라 글자의 70%가 한자어인데, 이것을 모르고 어찌 고급스런 설교를 하리요. 두루뭉술하며 넘어가는 설교가 얼마나 많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