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더욱 외롭고
어두운 곳으로 가 더 큰 죄를 짓게 된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은 서로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그것입니다. 관계가 끊어지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의미 자체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신 후, 하나님과 자연의 관계를 인간에게 위탁하셨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잘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관계는 다 의미와 핵심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 안에서 창조주는 피조물이 존재하는 목적과 그 의미를 부여해 주고 살아갈 힘과 능력을 부여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관계를 중심으로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책임의 관계입니다. 자연에 대해서 인간이 져야 할 책임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못하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깨어지고, 그 결과 자연과 인간은 함께 행복하게 공존할 수 없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장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 관계의 의미를 인간을 창조하심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먼저 창조하시고,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심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돕는 배필로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배필’로 번역된 ‘케네그도’라는 단어는 ‘마주보고 서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돕는 배필이란, ‘마주서서, 돕는 존재’라는 뜻이 되지요. 돕는 배필을 꼭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로만 보지 마십시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적용되는 말입니다. 특별히 남녀관계에서 더 잘 어울리고 적용되지요. 이것은 인간이 독처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로 돕고 사는 존재, 더불어 사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서로 돕는 관계이고 함께 책임을 지는 관계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회복은 깨어진 관계를 복원하시는 일이 주된 일입니다. 관계만 회복되면, 그 안에서 세부적으로 무너지고 죽어간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린 아담과 하와를 찾아가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때 인간에게 던지신 질문이,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디’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어디’는, 하나님을 떠나 아담이 거처하고 있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아담은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 불안하고 두렵고 외롭고 아픈 자리에 처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처절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에도 찾아오셔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여기서도 중요한 것이 ‘어디’라는 단어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디’라는 단어는 관계적인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있느냐?”라는 것은 ‘관계를 떠나 숨어버렸다’는 의미, 또는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 다른 곳에서 헤메고 있다’는 의미, 또한 ‘왜 그 자리에 있지 않느냐’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관계를 끊고 그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도 하나님은 “네 아우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라는 질문으로 아벨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 아벨을 들로 데리고 갑니다. 여기서 들이란, 아무도 없는 곳,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곳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은 우리를 더욱 외로운 곳으로, 그리고 혼자 있는 곳으로 데려가 더 심각한 죄를 범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질문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왜 혼자있느냐’고 물으실 때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네 이웃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실 때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아벨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여기서 십자가의 중요한 의미가 발견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십자가는 모든 관계 회복의 중심이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진단하기 위한 질문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진단한 결과, 힘들어하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회복의 방편으로 허락하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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