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 복음 메시지

최건호 목사의 제37회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는 한국기독교계의 명설교로 기억되고 있다. 1994년 동양선교회(OMS) 국제대회에서 성결교단 총회장으로서 유일하게 영어로 설교하여 거룩한 영감을 주었다. 

회중의 특별요청으로 두 번의 설교를 하였다. 일본 호리네스 교단에서도 영감이 충만한 설교로 기억되고 있다. 기독교계 방송국에도 영적 감화와 설득력 강한 설교로 알려져 방송 신앙상담 진행 등을 담당했다. 최 목사의 지성과 영성 학구적인 열정을 갖춘 설교에 젊은 목회자들이 도전을 받아 설교의 안목을 키웠다. 

최 목사는 설교가 목회자의 핵심적 역할이라는 신념으로 강단설교에 모든 것을 걸었다. 신학대학교 기숙사 생활 4년간 새벽마다 예배를 인도한 교장 이명직 목사의 설교에서 소명감이 재점화되어 헌신의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부흥사 이성봉 목사의 강력한 영적 지도력과 뜨거운 전도 설교와 신학대학 교수이며 충무교회의 전임자인 김석규 목사의 문학적이고 웅변적인 설교에서 신령한 영감과 영적성장을 체험했다. 

탁월한 세 분의 설교에서 영적 지도력과 헌신의 열정, 투철한 사명감, 순교 열정, 온전한 구원, 성령 충만의 은혜, 확고한 재림 신앙, 믿음의 기도를 통한 신유 은사, 회개와 은혜로 인간을 거듭나고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은사, 절제를 보여주는 성결 복음 메시지를 갈망하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큰 지도자였던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신학생 시절 2년 동안 영락교회 주일예배에 출석하리만큼 설교 탐구의 집념이 강했다.

“설교를 올바르게 하려면 종일토록 노력하여라. 그러나 밤새도록 기도하라”는 스미스 교수의 말대로 충분한 준비와 전달을 위해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해 해산의 각고를 겪었던 목회자였다. 설교를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회중이 메시지 내용 그대로 받아들여 결단하고 시행하도록 전달코자 많은 고민을 했다. 

설교자 자신이 먼저 성령의 도구로 변화되기 위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에 땀을 쏟아야 생명력이 있다는 체험을 하였다. 설교의 작성과 전달 과정에서 동화창작, 저술, 논설 칼럼 수필 등 다양한 문필활동과 구연동화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성결 복음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 많은 기간 노력을 기울였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교류를 통해 설교의 안목을 넓혔다. 최 목사의 글 ‘나의 설교론’, ‘열린 환경과 설교’를 보면 성결 복음 메시지연구에 몰두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믿음의 기업체 ‘신원그룹’ 월요예배를 비롯해 직장, 기관의 설교 초청을 받아 바쁘게 활동했다. 충무교회 은퇴 후에도 교단과 국경을 넘어 원하면 기꺼이 성결 복음을 전했다. 강남 침례교회의 금식기도원 주일예배 전담 설교, 건축미장공의 자비량 개척교회, 부산 푸른초장교회 등 무보수 설교로 개척교회 성장을 도왔다. 

일본성결교단 킨키교구의 신년연합 성회에선 일본어 설교로 성령 충만 은혜가 임했다. 강사 사례비 전액을 주최측에 헌금하고 사모에게 선물을 증정하기도 했다. 일본 야마토갈보리 자매결연 교회에서 일본어 설교로 영감을 주었고, 홍콩의 은반당 자매결연 교회에서도 영감 넘치는 설교로 은혜가 충만했다.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부산지역 젊은 교역자수련회에서 자비량 강사로 격려하는 등 그는 성결 복음 메시지를 계속 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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