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변화씨(卞和氏)가 옥(玉)의 원석을 얻어 왕에게 바쳤다. 왕의 측근이 ‘그건 옥이 아니라 돌’이라고 우겨대자 왕은 월형(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을 변화씨에게 내리도록 명령했다. 왕이 죽은 뒤 새 왕에게 그 옥돌을 바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에 오른쪽 발뒤꿈치, 이번에는 왼쪽 발뒤꿈치가 잘려나갔다. 그 후에 또 다른 왕이 등극했다.

▨… 새 왕에게 옥돌을 바치는 대신 그 옥돌을 그러안고 초산에 들어간 변화씨는 사흘 밤낮을 통곡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새 왕이 변화씨를 불러 연유를 물었다. 그 자리에서 토해낸 변화씨의 외침, “저는 두 발을 베인 것을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보배인 옥을 돌이라고 부르고 정직한 사람에게 속인다는 죄명을 씌우니 그것을 슬퍼할 따름입니다.”

▨… 이 몇 년 동안 교단에는 어지러운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성결인의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는 안되는 사태까지도 터졌다. 많은 목사님, 장로님들이 교단발전에 위기상황이 도래하였음을 직감하였다. 그러나 모두들 수군거리기만 할뿐, 그 상황을 타개하려는 의지는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내 발뒤꿈치가 잘려질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 아무리 과장해도 유신체제나 군사독재정부시절만큼은 아니겠지만, 말 한마디 때문에 교단의 험담가나 권력자에게 밉보이면 목사로서의 나의 삶은 끝장이라는 두려움이 ‘무진의 안개’처럼 목사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성결교단은 ‘닫힌 사회’화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비판이 사라진, 여론이 사라진 성결인 사회에 루머만 한낮의 유령처럼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 레흐 바웬사가 투쟁하던 때 폴란드의 지식인 요세프 비트린은 이렇게 자조했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도 침묵하겠소. 내 이웃이 노예가 되어도, 말할 수 없는 굴욕을 당해도…주리는 자유, 굶주림에 대해서도, 배부른 자의 배불러 함에 대해서도, 깡패한테 매맞는 시민에 대해서도 침묵하겠소.” 우리 교단이 비트린의 ‘넋두리’를, 피를 토하는 저항으로 받아들일 날은 과연 올 것인가. 비판정신은 지성에서 비롯되고, 목사는 누구보다 지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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