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딛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은퇴 후에도 활발한 활동
암 3기 수술 뒤 건강 찾아
‘한장원총 30년사’ 총지휘

은퇴 후 찾아온 질병의 고통을 극복하고 열정적 사역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성결인이 있다.

라동하 장로(혜화교회 명예·사진)는 한국사회발전연구원 사무처장으로 매일 종로5가 100주년기념관 사무실로 출근한다. 한사연이 최근 저출산 극복을 위한 100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어 그의 사역은 더 바빠지고 있다. 

청년 시절부터 50여 년간 섬긴 혜화교회(정진우 목사)에서 정년을 맞아 2017년 명예장로로 은퇴한 그는 은퇴 후에도 한국교회와 평신도운동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부여 규암교회 출신인 라동하 장로는 젊은 시절 서울로 올라와 혜화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교회를 섬기며 지방회 남전도회장, 장로회장, 부회장, 교회학교 회장 등을 맡으며 평신도 사역에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참여해왔다. 라 장로는 99세의 어머니 정정애 권사(혜화교회)를 모시고 사는 효자이기도 하다. 

라 장로는 한사연 사무처장 외에도 현재 우리 교단 평신도대학원 교학처장으로 평신도 지도자 양성에 일조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한국기독교원로장로회총연합회(이하 한장원총) 총무로 선출돼 대표회장 엄원훈 장로를 돕기도 했다. 라동하 장로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초교파 인사들과 교류하며 교계에서 우리 교단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힘써왔다.

교단 내외에서 젊은이처럼 늘 활발하게 움직이며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했던 그였지만 어느 날 갑작스럽게 큰 질병이 찾아왔다.

2021년 한장원총 총무직을 수락하고 한국기독교원로장로회총연합회 30년사』까지 제작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상황에서  ‘대장암’ 3기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며칠간 계속되던 변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변비약만 먹던 그는 증상이 계속되자 지인의 조언을 받아 대장질환 치료로 유명한 S병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았는데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 위급한 상태였다.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라 장로는 오히려 담담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집안 내력에 비추어 자신도 죽음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 측의 권유로 대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그 다음 날 침실에 누워 많은 생각을 했다. 코로나 시기라 가족조차 찾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더 외로웠다.

병으로 누워있는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져 하나님께 차라리 빨리 데려가달라고 원망 섞인 투정도 부렸다.

그때 갑자기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베드로전서 2장 9절의 말씀이 임했다. 그리고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자신이 입은 환자복과 침대 시트가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성령님의 신유의 역사가 자신에게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수술 후 5일 만에 병원을 퇴원하고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항암 5회까지 빠지던 머리가 6회째부터 안 빠졌다. 

암 수술 후 2년이 지난 지금, 라동하 장로는 예전의 건강을 되찾고 더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다. 병원에서 암치료를 받으며 정리하던 ‘한장원총 30년사’도 멋지게 완성했다. 

라동하 장로는 “아마도 김춘규, 엄원훈, 윤상순, 황의철 장로님 등 가까이서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과 혜화교회, 평대원, 한장원총 등 나를 아는 많은 분들이 밤낮으로 중보기도를 해준 덕분에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한 것 같다”며 감사의 고백을 드렸다.

라 장로는 “남은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보너스 인생으로 여기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살겠다”며 “더 이상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님이 부르실 때 행복하게 천국에 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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