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

최건호 목사는 신학교 기숙사 생활 4년 동안 새벽마다 설교를 인도한 이명직 목사, 뛰어난 한국의 부흥사요 영적 지도자로 뜨거운 전도 설교가인 이성봉 목사, 한국교회의 큰 지도자 한경직 목사, 신학교 교수이며 충무교회 전임자인 김석규 목사가 그의 멘토였다. 

이명직 목사는 비 교파적 전도를 위해 설립된 복음 전도관으로 성경교회라는 교단을 형성한 후 ‘사중복음’의 성서적 교리를 체험적 신학으로 승화하여 성결교회를 한국기독교의 장. 감. 성이라는 3대 교단으로 발전시킨 성서신학자, 교회행정가, 신학교 교장, 저술가로 성결교단을 이끌어온 지도자였다. 

이명직 목사는 복음주의 신학을 이끌어온 지도자였고 세속주의에 대항하여 성결 복음을 외쳤다. 이단 사설에 대하여 진리 보수를 주장했고, 고등비평에 대해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으며, 복음의 순수성을 보존했다. 그는 인격적 생활로 성결의 향기를 내뿜은 한국의 성결인 중 성결인이었다.

신학생 신앙부흥회를 인도한 이성봉 목사에게서 성결 복음 제단에 강렬히 헌신하도록 감동을 받았다. 최 목사는 “이성봉 목사의 신앙부흥운동과 교회 성장”이란 칼럼에서 “이성봉 목사는 ‘한국교회의 무디(Moody)’라는 별명이 붙은 한국의 부흥사 중 큰 별이었다. 성결교단의 공인된 부흥전도 목사로 철저히 헌신하였다. 영적 지도력과 헌신적 열정이 탁월했고 사명감이 투철하게 뛰어났기에 모든 교회와 교단 지도자들의 지지와 인정을 받았다. 

교단의 정치나 개 교회 목회의 야심이 전혀 없이 초연한 복음 전도자로 자족하며 겸손하게 헌신한 큰 별이었다. 한 해 동안 수천 명에게 복음을 전도했고 시골교회나 큰 도시교회를 구분하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 매주 부흥회를 인도했다. 

그분이 인도하는 부흥회는 그 열정이나 모여드는 신자의 규모, 집회의 결과에서 다른 부흥강사와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했다. 가정에서도 검소하고 소박한 절제로 성결한 생활로 모범이었다. 

이성봉 목사의 부흥 운동과 사경회는 언제나 회개와 구원이 선포되고 성령 충만하여 성결한 삶이 강조되었다. 평소에 예수 중심, 성경 중심, 전도중심에 철저히 헌신한 목사였다. 

간증이나 생활에도 한결같이 주님의 사랑과 은혜 감격으로 자신을 제물로 드리며 살았던 분이다. 오늘과 같은 풍요시대 물량주의 시대에 한국교회가 살 길은 선조들의 신앙의 경계석을 다시 찾는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 제일주의’ ‘예수 중심 생활’ ‘순간마다 주로 호흡하고 일보 일보 주와 동행한 그의 좌우명에 크게 감동했다.” 

김석규 목사는 충무교회 전임 목회자이며 그의 신학교 은사다. 학문 연구와 강의에 열정이었고 학생들은 신앙적인 감화가 컸다. 잘못은 타이르고 어루만지는 사랑의 권면하는 모습을 닮고자 했다. 김석규 목사의 설교는 뜨거운 감동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청중을 사로잡고 성서의 해박한 진리로 깨우침을 주었다. 

신령한 영감과 아름다운 언변으로 감동적인 메시지를 담은 설교는 그에게 영적인 만족을 누리게 했다. 최 목사는 김 목사를 평생 스승으로 존경하였다. 최 목사는 신학생 시절부터 강단의 설교 사역을 소중히 여겨 힘을 기울였다. 신학생 시절부터 한국교회의 큰 지도자였던 한경직 목사의 3부예배 설교를 매주 들으려고 2년 이상 영락교회에 출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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