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3주년 예배를 드리는 날 아침 내 마음 한켠은 시리고 아렸다. 휴스턴 같지 않게 2월 중순인데도 코를 아리는 찬 바람 탓이 아니라 본당에 휑하니 비어있는 두 자리에 머문 내 시선 때문이었다. 

전 세계를 전무후무한 속도와 넓이로 뒤흔든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형제사랑교회는 태어났다.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황사처럼 밀려든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과 모임 제한, 자가 격리 등의 규제 탓에 교회는 바로 척박한 광야로 들어갔다. 

함께 개척을 한 장로님 집에서 10개월간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게 됐을 때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형교회 못지않게 줌(Zoom)으로 찬양, 기도, 설교까지 온전히 예배드릴 수 있음이 감사했다. 또한 모임, 심방, 행사와 같은 활동이 멈추자 제자 훈련을 자체 개발할 시간적 여유도 주어졌다. 그렇게 개발한 ‘영적 가족 공동체 프로젝트’를 12주간 소그룹으로 나눠 실행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근 일 년이 되어 가도록 10명 이상 모이지 못한다는 규제는 풀리지 않았고 주기적으로 변이하는 코로나의 끝자락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컴퓨터 화면에 갇혀버린 성도들의 얼굴을 보자면, 화성에서 쏘아보낸 영상을 접하는 것처럼 점점 멀고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짧은 한 달이었지만 함께 한 공간에 모여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며 느끼던 열기와 온기가 그리웠다. 그런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고 주기적으로 주차장 예배를 준비해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큰 주차장에 모여 각자 차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나만 밖에 나와 스피커로 찬양과 말씀을 인도했다. 차창 문 너머로 들려오는 성도들의 희미한 찬양과 기도 소리, 아멘 소리에 한껏 귀 기울이며 그들의 반응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럴 때면 우릴 살피시고 우리의 작은 소리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런 거겠구나 싶었다.

코로나란 쓰나미가 삼켜버려 정지해버린 화면처럼 지나가 버린 2020년 이후 조금씩 풀어지는 규제 속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던 아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학교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교회도 앞으로 하이브리드 예배라도 하려면, 새로운 예배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듬 해가 됐을 때는 교회 형편에 최선이란 생각이 들어 조금 넓은 집을 사택으로 빌려 예배 장소를 옮기게 됐다. 그리고 개척교회 입장이었지만 멕시코 선교지도 정해서 이현 선교사님을 다달이 후원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물질과 은혜를 흘려보내게 됐다. 

나는 교회가 진정한 영적 가족 공동체로 거듭나려면 먼저 말씀을 바탕으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혈연 가족’이란 확고한 이해와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동체적 치유를 돕고 전체적인 교회의 변화를 유도함으로 하나님과는 더욱 깊은 관계로 나아가고 형제들과도 친밀하고 건강한 관계 맺음을 하는 가족공동체를 구축하는 게 목표였다. 공동체가 변할 때 개개인을 변화시킬 수 있고 또 그렇게 변화된 개개인이 교회를 더욱 안정시키는 순환적 형태로 갈 것을 믿었기에 보웬의 가족체계 이론에 근거한 영적 가족 공동체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고 12주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그리고 오직 말씀으로 교회 공동체가 정결케 되는 것만이 살길이란 생각에 성경 통독을 진행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훈련을 위해, 주일 말씀을 듣고 나누며, 삶에 적용하는 연습을 매주 시켰다. 

그리고 이민가정이 직면한 언어와 세대 간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장년부 설교와 같은 본문으로 청소년 설교가 진행되도록 장로님 가정과 매주 설교 말씀을 준비하며 함께 나눴다. 청소년 설교는 1.5세인 장로님의 아내분이 교회 간사로 섬겨주시면서 매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영어로 전달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장년부와 청소년부 예배 말씀을 통일해서 진행한 결과는 매우 흡족했다. 모국어가 다른 1세대 부모와 2세대 자녀의 소통엔 당연히 제약이 따르기 마련인데, 설교 본문이 같다보니 가정예배를 드릴 때 대화가 원활하고 신앙의 전수가 수월해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녀가 자신과 같은 메시지를 듣고 있다는 게 혹시라도 잘못된 신앙관에 빠지는 건 아닌가란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편 나는 코비드 기간 동안 미드웨스턴신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졸업하게 됐는데, 그때 만나게 된 성결교 선배 목사님을 통해 미주성결교회 교단을 소개 받게 됐다. 무엇보다도 큰 도시인 휴스턴에 성결교회가 없다는 것 때문에 지방회 목사님들이 오랫동안 기도해 왔다는 소식을 전해줬고 나 또한 성결교 출신 목회자였기에 오랫동안의 기도 응답이라며 모두 기뻐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교단 가입을 권면받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장로교 내지는 침례교 출신이어서 거기 상응하는 교단 가입을 원하던 차였다. 그래서 미주성결교단에 가입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동의하게 해 달라는 3주간 금식기도를 했다. 사무총회때 성결교단을 소개했는데 참된 믿음과 회개, 그리고 믿음의 행위를 통한 성결로 나아가자는 교회의 목회 철학과 성결교단이 지향하는 사중복음이 서로 맞다고 판단되어 전교인의 동의를 얻게 됐다. 정말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딴 섬처럼 있다가 교회와 맞는 교단에 가입도 하게 되고 하나님이 앞으로 행하실 일들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다 보니 교회 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렇지만 복음은 흩어짐과 순환의 역사인데, 집에서 모이는 형태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새로운 성전을 놓고 전교인이 교대로 금식하며 기도한 끝에 2022년엔 장로님이 구입한 2.5에이커가 되는 부지에 있는 부속건물이 딸린 집으로 이전하게 됐다. 그렇게 얻게 된 부속건물을 전교인이 온 힘을 다해 성전으로 꾸며 봉헌했다.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부속건물을 보수하고 단장하는 일로 7만불의 건축헌금도 모았지만, 많은 부분을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바닥과 천장 청소, 페인트, 강대상 짜는 것과 카펫 까는 일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목수 일을 주일과 수요예배 후, 혹은 토요일 저녁에도 모여 4개월에 걸쳐 끝냈다. 교회 성도가 직원으로 있던 아리아나 헤어숍에서 이런 교회 소식에 감동을 받아 만불을 건축헌금으로 보내왔고 G3 킬린교회 홍피터 목사님도 만불을 후원해주시면서 오레곤선교교회와 뉴욕성결교회와 함께 다달이 선교후원까지 보내주시니 부속건물을 꾸미는데 들었던 10만불 가까이 되는 돈이 여러 도움의 손길로 모두 채워지는 감격적인 역사가 있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이후로 꾸준히 방문객을 보내주셨고 어느덧 6가정이 교회에 정착하게 됐다. 영적가족공동체 프로젝트와 말씀 훈련으로 얻어내고자 했던 결과물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맞게 된 2023년엔 교회 설립 3주년을 맞아 두분의 안수집사님과 한분의 권사님을 피택하게 되어 사역의 보람도 느끼던 차에, 너무도 아끼던 한 가정이 여러 갈등 끝에 설립예배 몇주 전 교회를 나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 가정이 나간 주는 설립예배를 앞두고 교회 대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그렇잖아도 일손이 부족한 마당에 이런 일이 벌어지자 모두 기운이 빠지고 마음이 상심한 상황에서 거대한 트럭을 몰고 어떤 분이 교회를 방문했는데, 예배 후 끝까지 남아 교회 청소까지 해주고 가셨다. 그러면서 요즘같은 시대에 돈으로 성전을 꾸미지 이렇게 손때 묻혀가며 일일이 만들어 성전을 봉헌하는 성도들이 어딨냐고 기독교 신문에 나와야 한다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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