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는 잘못된 일이다 
창조 환경에 관해서나 이웃과의 관계에서나 
명백하게 성경과 상충한다.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

“만약 이게 괴담이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일본 정부는 왜 오염수를 일본내 호수나 강 혹은 앞바다에 버리지 않고 해안에 터널까지 만들어 1km이상 먼 바다에 버리려 하나. 말이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오염수 탱크가 일본 땅 절반을 가득 메우는 한이 있어도, 오염수를 바다에 버려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 시인 가와즈 기요에(61세)가 지난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 행사 차 한국을 방문해서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시인은 시 분야에서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H씨상’을 수상했다. 2006년 큰 병에 걸려서 힘겨울 때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고 공책에 베껴 쓰면서 삶의 위기를 이겨냈다. 가와즈 기요에는 일본의 오염수 처리에 관한 상황과 정보를 잘 알고 있다. “오염수 탱크가 일본 땅 절반을 가득 메우는 한이 있어도”라는 표현에는 시인의 맑은 양심이 담겨 있다. 이 여인은 시인이므로 시인으로서 시인답게 말한다.

사람마다 제 자리가 있다. 저다움이 덕이다. 우리나라의 병폐 가운데 하나는 정치 과잉이다. 장사로 표현하면 정치인들은 이 나라에서 계속 호황이다.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적어도 16세기의 마키아벨리즘 이후에 정치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정치인에게 세간의 평판은 윤리적 덕목과 상관없을 때가 많다. 오늘날의 계량적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표는 선악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다. 마키아벨리가 491년 전에 ‘군주론’에서 간파한 현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군주가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하거나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무슨 짓을 했든 칭송받으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게 된다.”

시인은 시인으로서 말하고 산다.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 말하며 산다. 그러면, 신앙인은 신앙인으로서 말하며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시인이며 그리스도인인 사람, 또는 정치인이며 그리스도인인 사람은 자기의 두 가지 정체성에서 어떤 것이 우선일까. 기독교 신앙으로 보면 당연히 그리스도인다움이 먼저요 근본이다. 시인이든 정치인이든 또는 그 어떤 직종에 있든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의 가치에 따라 말하고 살아야 한다. 기독교의 가치가 정치나 예술, 사회의 각 영역을 변화시키는 문이 여기에서 열린다.

우리나라의 정치 과잉 상황에서 너무 많은 국민이 정치인처럼 말한다. 보수나 진보 정치 집단에 종속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의 가치에 서서 말해야 한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는 잘못된 일이다. 창조 환경에 관해서나 이웃과의 관계에서나 명백하게 성경과 상충한다.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 윤석열정부의 논리는 강변(强辯)에 불과하다. 합리적 의심과 정당한 윤리적 질문에 답변하지 않는다. 윤석열정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입장을 묻는다면 너무 순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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