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 욥에 관한 성경의 평가입니다. 욥은 사람에게도 하나님께도, 이런 평가를 얻었습니다. 얼마나 그 신앙의 깊이가 깊고 행함의 선함이 있었길래, 사단 마귀에게 시험을 당할까? 사단 마귀도 대충하는 신앙인에게 시련을 주지 않습니다. 알아서 스스로 넘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욥은, 사단 마귀의 시샘을 받을 정도로, 그 믿음이 신실했습니다.
그러나 욥기 전체 말씀을 읽어보면, 욥도 어느 순간엔가 그가 가진 믿음의 바닥을 드러냅니다. 욥도 불평합니다. 욥도 원망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선한 사람인지,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는 사람처럼, 하나님께 달려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철저히 침묵하십니다. 말 한마디, 징조 하나면 끝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십니다. 이유는, 그로 인해 욥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고난 속에도 뜻이 있다’는 말을 하지만, 결국 이후 욥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당장 욥에게 도움이 될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상황적 변화에 관한 말씀도 아니고 현실적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근거의 말씀도, 아닙니다.

욥이 알지 못하는, 세상 이치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듣는 욥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말뿐입니다. 고난 속에 있는 욥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말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욥에게 필요한 말씀을 하나님께서 하신 겁니다. 세상은 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감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욥과 같습니다. 내가 하는 기도에 응답하시고, 응당 그에 맞는 복과 선물을 주시는 분. 마치 내가 원하면 뭐든지 채워주려고 애쓰는 부모님 정도로 하나님을 인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이 아니라 인류 전체, 전 세계 모든 자연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결국, 욥에게 세상 이치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욥 역시 이 세상의 일부분이며, 그로 인해 그를 돌보셨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욥이 알고 경험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모습의 전부가 아닌 극히 일부였던 겁니다. 욥은 이 사실을 깨닫고, 그동안 자신의 신앙적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이었는지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앞으로 자신의 삶을 결단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는 회개의 모습으로 머뭅니다.

이런 욥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욥을 친구들 앞에서 ‘옳다’ 인정해 주시고, 욥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나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시며 보여주신 것처럼, 사랑하고 섬기며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는 다르게 살기를 바랍니다. 이왕이면 내가 더 많이 갖고, 얻고,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서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고, 바뀌어야 할 삶의 모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고난도 유익입니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 더 선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찾고, 그분과 동행하며, 바른 것을 깨닫고 변화된 삶을 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