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교육교재 출판과 말년 소망의 삶

총회본부 교육국장으로 일하던 필자와의 만남은 1985년이었다. 당시 교육국 출판물은 유치부부터 장년 구역교재까지 8가지였는데 S출판사가 독점했다. 그런데 해마다 12월 중순까지 교재가 전국 교회에 납품돼야 하는데 여의찮았다. 그래서 한곳의 출판보다 두 곳으로 나눠 출판하면 일정이 빨라 납품도 빠를 것으로 판단해 성결교회 성도의 다른 인쇄소를 찾았다.

마침 어느 장로의 소개로 주환 장로를 소개받아 견적서를 가지고 만나자고 했다. 며칠 후 만나 견적서를 보니 신우인쇄소가 얼마 전 일정사로 상호가 바뀌더니. 지금은 어느새 두루출판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복음을 두루 전파한다는 선교적 차원에서 변경한 상호라고 했다. 그가 제시한 단가를 보니 일반적인 단가보다 많이 낮아 오히려 필자가 걱정해야만 했다.

“장로님. 이런 단가로 일하면 무얼 먹고살지요?”하고 말했더니 “하나님의 일을 정성껏 하면 하나님이 먹고살게 해주시니, 저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고 신앙고백적인 말을 했다. 그의 신앙적인 말에 감동하여 8개의 출판물 중 4개를 맡겼더니,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12월 중에 모든 공과가 예정대로 발송되었는데, 그는 총회의 교육 발전을 위해 약 12년 동안 교단을 위해 봉사한 것을 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가 교재 때문에 총회본부로 올 때 성수대교를 넘어서 다녔다. 1994년 10월 21일 이른 아침에 총회본부 교육국에 교재 문제로 좀 빨리 성수대교를 지나려 하는데 입구가 오랫동안 차들로 꽉 막혀 답답했다. 사실은 그날 조금 전 출근 시간대에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이다. 그가 사고를 당할 뻔했는데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헌금을 했다고 한다.

그는 70세가 될 무렵부터 신장병으로 약 15년 동안 신장 투석을 했다. 이를 안 그의 막내아들이 혈액이 같아 신장 하나를 기증하겠다고 하자, 그는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생명을 연장해 주면 사는 것이지 자식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오래 살지 않겠다며 거절했다.

그는 50년이 넘도록 서부교회 근처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섬기던 교회 곁을 떠나지 않고 주님을 늘 사모하는 마음으로 새벽예배와 주일성수를 한 번도 거르는 날 없이 교회 봉사를 하였지만, 소천하기 5년 전 자녀들의 주택 마련을 돕기 위해 김포의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는 일주일에 3번씩, 하루에 5시간 동안 피를 걸러내는 힘든 투석을 하면서도 주일성수를 위해서 김포에서 마포로 2~3시간의 왕복 거리의 서부교회에 출석하며 언제나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원로장로로서의 책임과 만나는 신자들마다 늘 격려하는 모범적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는 2021년부터 건강이 많이 악화하여 어느 날은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을 불러 “너희들 예수 잘 믿어라. 그러면 부모와 할아버지로서 나의 할 일은 다 한 거야”라는 유언의 말을 하였다. 그 이후로도 가족들에게 하나님 중심으로 열심히 살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사람에게도 정직하여 믿음을 잘 지켜 충성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당부를 했다. 평소 즐겨 부르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의 찬양처럼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서 맡겨주신 사명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기 위해 늘 기도하면서 살았다. 그러다 2022년 3월 말, 코로나 감염에 입원 치료 중 2022년 4월 2일 아침에 하나님의 부르심 받아 주의 품에 안겼다. 그의 장례식은 울음바다였고 유해는 일산 공감수목원에 안장됐다.

그의 가족은 정성님 명예권사와 2남 2녀로, 아들들은 안수집사와 서리집사로, 딸들은 권사와 사모(영국교회)로 있다. 주환 장로의 믿음과 기도의 열매로 맺어진 자손들이 신앙의 대를 이어 교회의 직분을 맡아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하므로 장로님의 뜻을 이루어 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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