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인쇄소와 서부교회 교회생활

故 주환 장로

혁명 후부터 그의 군 생활에 활기가 생겼다. 무엇보다 군대에서 부정부패가 사라진 것이 좋았다. 군수물자를 양심적으로 배급하고 원칙적으로 처리했다. 그는 주일마다 사단의 교회에 자기 조수와 병사들을 전도해서 함께 가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를 드렸다.

그가 군대 복무 중 단 한 번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병장이 되어 제대가 몇 개월 남은 중 하루는 전화가 와서 대화하는 중에 갑자기 전기가 흘러들어와 그는 정신을 잃어 수화기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쓰러져 곧 군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군의관이 벼락을 맞은 것과 같아 거의 죽는다고 했지만, 그는 몇 시간 후 깨어났다. 사고 당시 함께 있던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큰 불덩이가 군화를 뚫고 나갔다며 불에 탄 군화를 보여주며, “주 병장이 열심히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그를 살려주셨다”고 증언했다.

그는 군 생활 32개월 만에 제대했다. 그는 기차와 버스와 배를 갈아타고 고향으로 가서 가족들을 만나 하나님 은혜로 제대했다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날 밤에 교회로 가서 군 생활의 고난 중에서 함께 하시고 믿음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부르며 철야기도했다.

얼마 후, 그는 누구의 소개로 대전으로 갔다가 훌륭한 장로님을 만나 그분의 도움으로 대전의 장로교신학교에 다녔다. 그가 중퇴한 호남고등성경학교가 어느새 호남신학교로 승격되어 있어서 그는 곧 3학년에 편입되었으나 남의 도움 없이 자립하여 살겠다며 기도했다.

어느 날 학교 친구들의 이야기 중에 서울의 마포에 애오개라는 달동네가 있는데, 인심 좋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살기 좋다는 말에 그는 즉시 서울로 올라와 애오개 달동네로 갔다. 그는 조그만 셋집에 살면서 주일에 장로교회 찾다가 마포중앙장로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며칠 후에 담임목사가 찾아와 상담했는데, 그의 딱한 형편을 듣고 우선 자기 교회의 주보를 인쇄하는 작은 인쇄소부터 하라고 했다. 그는 곧 길 건너 서부성결교회에 찾아가 목사님을 찾아뵙고 주보 인쇄를 납품하기로 하고, 또 다른 작은 교회도 찾아가 납품 허락을 받았다.

1966년 당시 마포중앙교회는 크고, 서부성결교회는 작았다. 금요일에 주보 원고를 받으러 서부교회에 가면 개척자 변경순 목사가 원고를 주며, 그에게 교회에 대한 문제를 얘기하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신앙적 대답을 몇 번 하면서 점점 친하게 되었다.

변 목사는 인쇄소에 자주 심방 와 기도해 주고, “우리 교회는 집사님 같은 인물이 필요한데 함께 일하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평생 장로교회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했지만, 변 목사를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마포중앙교회 박 목사께 허락받고 서부성결교회에 출석했다. 그때가 1966년 여름이었다.

그는 1969년에 누구의 중매로 서울남대문장로교회 교회학교 교사인 정성님 양과 결혼하여 가정의 행복을 얻은 후, 교회에 더욱 열심히 섬기며 일했다. 그가 교회학교 부장으로 10여 년을 설교로 섬기는 동안 차준희, 정덕균 등 5~6명의 소년이 은혜를 받고 후에 우리 교단의 목사가 되었다. 그는 교사들을 자주 집으로 초대하여 격려해 교회학교가 크게 부흥하였다.

어느 날 군에서 그를 괴롭혔던 하사가 어떻게 알고 인쇄소를 찾아와 고향에 내려갈 여비를 호소했다. 그는 미운 감정보다 불쌍한 마음에 여비를 주면서 “예수 믿고 바르게 살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권면하면서 그가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기도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많은 은혜의 체험을 통해 기도 생활에 힘썼다. 철야기도를 했고, 토요일 밤 기도원에 가서 주일 새벽에 돌아와 교회 봉사에 힘썼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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