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장로와 세명의 부인

함경도 삼호 지방에 김 장로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삼호 김 장로"라고 불렸다. 본래 그는 철저한 조상숭배 신봉자로 기독교에 대해 완강하게 반대했던 인물이었지만 마을에 세워진 자그마한 흙벽 교회당 헌당식에 참석했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교회에서 무슨 짓거리들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훼방꾼의 마음으로 그곳에 참석했는데, 복음의 메시지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고 보살피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는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동안 그가 신봉해 왔던 유교의 가르침에는 이런 유의 말이 없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날마다 그때 들었던 말이 떠나지 않고 생생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마침내 그는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고, 가족들을 모아놓고 “오늘부터 우리 집안은 예수를 믿기로 결정했으니, 모두 교인답게 행동하라"고 선언했다. 그는 함흥으로 사람을 보내 성경과 찬송가를 구입하고 가족들에게 나눠주었고, 가족들이 성경과 찬송가를 배울 수 있도록 사람을 청하여 과외 받게 했다.

또 새 신앙생활에서 지켜야 할 강령(綱領)에 대해 여러 가지를 배웠다. 그런데 그 중에는 ‘그리스도인은 아내를 한 사람 이상 가지면 안 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그는 매우 부유했고 세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 여자 모두가 각각 자신의 자녀들을 키우고 있어 여자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결정한 마당에 이 문제만큼은 해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그럼 제일 나이 많은 처를 내보내야겠어. 여하튼 그 마누라에게는 가까이 가지 않으니까. 둘째 마누라도 별로 살림꾼이 못돼. 그 여편네가 없어도 내겐 지장이 없겠어. 그런데 셋째 마누라는 내가 스스로 고르기도 했거니와 제일 나이가 어리고 예뻐. 그러니 셋째 마누라를 데리고 살아야겠어."

그는 자신의 이런 결심을 담임목사에게 털어놓았다. 크게 환영하고 격려할 줄 알았는데, 담임목사가 반대 의견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첫 번째 부인이 정식으로 합법적인 부인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측실이 아닙니까? 첫째 부인을 택하셔야 합니다."

과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심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담임목사의 권고에 순종하여, 그는 첫째 부인을 택했고, 다른 부인들도 먹고 살 길을 마련해주고 다 내보냈다.

이후 그는 자신이 가진 재물과 지위를 온전히 주님께 드렸다. 목회자와 함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의 멍에를 지는 신실한 장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신앙을 따르던 자녀들 가운데 두 아들도 해방 후 공산치하에서 순교자가 되었다. 

‘삼호 김 장로.' 그는 예수님의 비유 속에 언급된 밭에 감춰진 보화나 매우 값진 진주의 가치를 알았던 사람과 같은 부류임에 틀림없다. 그는 복음의 참된 가치를 알았기에 기득권 포기의 장벽 앞에서 뒤로 물러나지 않고,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제자도의 메시지를 담은 글들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너무 육신적이 되어버린 교회와 그 지도자들을 향한 반동적 외침인 것 같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탐하다가 하늘에 속한 ‘최고의 것들'을 잃어버린 모습, 이것이 최근 한국교회의 주류가 빠져 있는 함정이 아닐까? 제자도, 세상의 눈으로 보면 ‘좋은 것'을 버린 어리석은 포기처럼 보이지만, 하늘의 눈으로 보면 ‘최고의 것'을 붙잡은 현명한 삶을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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