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 땅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예배당 중의 하나를 세운, 소위 성공한(?) 목회로 많은 목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원로목사가 눈물을 글썽이며 용서를 빌었다. 내 인생의 최대 실수는 그만한 그릇이 못되는 아들 목사에게 교회를 세습시킨 것이라고…그러나 고백에도 많은 신앙인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들 목사와의 진흙탕 싸움의 전말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 그의 목회가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을까? 한국교회의 목사 누구보다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강조해왔으며 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공로가 있었음에도 이 땅의 신앙인 누구에게서도 존경받지 못하는 현실을 우리 성결교회 목사들은 신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니, 이름난 목사를, 교회를 성장시킨 목사를, 선망의 대상, 또 존경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는 현대철학에서도 절대적이다. 한때는 철학자라는 말이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쓰여지기도 했었다. 철학사에서의 그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격적으로는 존경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치품으로 몸 치장을 하고 진수성찬을 즐겼으며 따뜻한 기름으로 목욕한 다음-악의적 비판자들의 주장이지만-그 기름을 식용유로 팔아먹었다.”(미하엘 코르트, 광기에 관한 잡학사전)

▨… 목회자들은 흔히 교회를 성장시켜 이름깨나 난 목사를 부러워하며 그의 목회방법을 자신의 목회 모델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이름깨나 알려진 그 목사를 결코 존경하려 하지 않는다. 사회가 존경하지 않는 사람을 선망의 대상, 목회의 모델로 삼아야 하는 이 딜레마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이것이혹 목회의 숙명인가?

▨…“의기(器)는 속이 가득차면 엎질러지고 박만(樸滿)은 속이 빔으로써 온전해진다. 때문에 군자는 차라리 무(無)에 살지언정 유(有)에는 살지 않으며, 모자란 편에 처할지언정 완전한 쪽에 처하지 않는다.”(채근담) 이 문장의 군자를 목사로 바꾸면 망발일까. 성령의 사람은 성결해야 하고 성결인은 존경받아야 하는 이 등식이 최근의 우리 교단에서 아무래도 조금 부등식으로 바뀌는 것 같아 넋두리로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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