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6절을 새번역으로 보면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로 나와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의의 길을 따르는 발걸음에 회의가 들 때 내뱉은 넋두리로, 17절은 그 해답을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알게 되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람이 연구하고 찾아도 알 수 없는 것, 오직 계시(啓示)해 주셔야 알 수 있는 것이 인생의 신비입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무엇이 나를 감싸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계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1절 “내 마음이 산란하여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2절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22절), 23절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는 무엇입니까? 20절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입니다. 아울러 믿음의 고백으로 드릴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24절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와 25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입니다. 

우리는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음성 듣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계시하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끊임없이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내 안에 은혜, 말씀의 흔적이 있어야 은혜로 해석되고 깨달아집니다. 아무리 조언하고 지도해 주는 사람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적 진리를 깨닫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래서 공자도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진리(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확실하고 분명한 만남의 체험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갑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죽음도 불사하고 주어진 길을 벗어나지 않고 걸어갔던 사람들, 에스더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담대하게 자기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수 24:15)라고 선포한 여호수아처럼 담대한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문제 많은 세상에 근심거리로 둘러싸인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오늘의 답답함과 막막함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말씀 속에서 해답을 찾으십시오. 주님은 계시해 주십니다. 내일의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말씀 속에서 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최고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 그 예수를 가까이하여 더 깊이 알아감으로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계시로 삶의 길을 밝혀 가시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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