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로 엮는 성결교회 이야기 1366호
성장과 신앙생활

       故 주환 장로
       故 주환 장로

주환 장로는 일제 강점기인 1939년 11월 9일(실제는 음력 1938년 5월 3일) 전남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서 농부 주행관 씨와 곽순명 씨의 2남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벽파리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배 수십 척을 격파시킨 곳으로 이때부터 벽파진으로 불렀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때가 1946년 3월이었다. 이때는 조국이 광복을 맞은 이듬해로 아직 건국하기 전이지만 오랫동안 전권을 장악했던 일본이 쫓겨 갔고, 그동안 천대를 받던 우리 말과 우리 글로 교육하기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어 한글 교과서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또래보다 키도 크고 잘 생겨서 아이들의 흔한 패싸움에 대장을 시켰지만 그는 장난이라도 싸우는 것 자체가 싫어 나가지 않는 등 교회만 열심히 다니는 착한 아이였다. 그래서 마을 어른들도 어른 같이 의젓하다는 뜻으로 ‘아이어른’으로 인정받으며 자랐다.

고향 마을이 제법 커서 소학교도 있고 교회도 있어서 소학교를 다니고 교회도 다녔다. 그는 주일학교에서 배운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신앙과 용기, 그리고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신앙으로 사자와 풀무 불 속에서 살아난 이야기는 평생 그의 신앙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기도 중에 큰 힘을 얻어 절에 다니시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교회에 다니게 하였고, 아버지는 가문이 섬기는 유교 때문에 교회 가는 것을 꺼렸으나 가족이 교회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마을의 주 씨의 친척 아이들을 가끔 찾아가 전도하였다.

주환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읍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여 매일 30분 이상 산길을 찬송가를 부르면서 다녔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다니도록 전도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세례 문답에 합격하고 세례받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이 섰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했으나 가정의 형편 때문에 상당한 경비가 드는 고교 진학은 어려웠다. 당시 진도에서는 고교가 있는 광주나 목포로 가서 학비와 하숙 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아버지의 농사를 열심히 도와주면서 교회의 일에도 열심을 냈다. 주일학교의 선생으로 성경을 열심히 읽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동안 그가 배운 성경 공부는 교회 여전도사의 설교를 통해 배운 것뿐이어서 갈급했고, 그래서 성경을 잘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경도 부지런히 읽으며 혼자서 공부했다.

그가 18살 된 겨울 농한기를 맞아 교회에 부흥회를 개최했다. 강사는 큰 은혜를 받은 어느 목사의 사모님이었는데 그는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고 처음으로 회개했다. 어려서부터 착하게 자랐기 때문에 죄 없는 줄 알았으나 작은 죄까지 생각나서 회개하고 평안을 얻었다.

그가 은혜를 받고 보니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먼저 마을의 같은 주(朱)씨 성을 가진 집마다 찾아가 전도했는데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들이 하나둘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작은 교회가 그의 전도로 신자들이 생겨나자 교회 어른들이 그를 칭찬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성경 공부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전도사에게 상담했더니, 목포나 광주에 가면 장로교회의 고등성경학교가 있다고 했다. 자기도 광주의 고등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었다면서 자기가 광주에 잘 아는 목사님께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그는 처음으로 앞길에 빛을 발견한 것처럼 기뻤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싶어 광주로 가겠다고 아버지와 상의 했으나 믿음이 없는 아버지가 처음에는 반대했다. 그러나 그의 전도로 믿음이 좋아진 어머니가 찬성하여 아버지를 설득해서 몇 푼 여비만 가지고 난생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인도해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집을 떠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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