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 :13)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감사한 것은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를 키우는 수고에 비교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다. 자녀 양육을 통해 이전에는 몰랐던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 자녀를 키우면서 이전에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얼마나 잘 성장했을까 고민해본다. 에베소서 4장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는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유독 ‘충만’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 ‘충만’하지 못한 내 모습이 투영된 것일까? ‘충만’하기를 소망하는 간절함이 마음에 와닿는 것일까? 무엇이 ‘충만’일까?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충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까?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모르면 적당히 하고 지나간다. 흉내를 내고, 핑계를 대고, 눈가림한다. 성에 안 차는 자녀의 모습이지만 마음이 넓은 부모는 자녀들의 부족함을 다 알면서 눈 감아 준다. 

내 자녀를 사랑하고 믿기 때문이다. 부족한 모습이지만 자녀들에게는 그것이 최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성장하고 철이 들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자녀인 우리를 보실 때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이 우리가 ‘충만’하기를 기대하고 기다리시지만 실망하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보지만 나 스스로가 만족할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는 말씀이 적당히 닮으라는 것도 아닐 것이다. 부분적으로 닮으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닮은 척하라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닮다가 포기하라는 것도 아닐 것임을 우리는 안다. 최선을 다해도 완벽하게 닮지 못할 수도 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철이 든 자녀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기대를 기뻐하며 ‘충만하게, 충분하게’ 닮으려고 하고 성장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부족한 자녀를 기다려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응원해 주심을 믿는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미쁘신 분이시기에.

 언제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를 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이다. 하지만 여전히 실망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책망하지 않으시며 오늘도 기꺼이 도우시고 응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기대를 알기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푯대를 향하여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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