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희망은 ‘기도 뿐’
치질인 줄았는데 직장암 말기
오직 기도만 의지해 새 생명 얻어
“나는 죽고, 예수만 사는 인생으로 거듭나”

“지는 암 걸려 죽을 자리에 있었는데 주님이 건져주셔서 여분의 삶을 살고 있어유. 능력의 주님이 제게 새 삶을 주셨으니, 남은 인생은 오직 주만 위해 살아야죠. 나는 없고, 예수만 있는 삶을 사는 게 목표에요.”

서산교회 김송현 장로는 요즘 입만 열면 “예수님 은혜로 암을 이기고 새 삶을 살고 있다”는 고백이 자동으로 나온다. 말기 암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릴 뻔했는데, 하나님이 진짜 그의 인생을 부활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수술 불가 말기 암 진단
김송현 장로는 지난해 3월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건축 일을 하는 그는 고질병인 치질을 앓고 있었는데, 일이 바빠서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 증세가 너무 심해져서 서산 모 병원에서 치질 수술을 했는데, 나아지기는커녕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다. 가장 강력하다는 진통제를 두 배나 맞아도 여전히 통증을 호소하는 그에게 병원에선 더 큰 병원에 가라고 권했다. 

수술하고 2주 만에 배에 복수가 가득 차 5리터나 빼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됐다. 살기 위해 천안에 더 큰 병원으로 옮겨간 김 장로는 그곳에서 ‘직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치질 수술을 하면서 암을 잘못 건드려서 급성으로 암이 퍼졌다는 것이었다. 현 상황에서는 수술할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도 들었다. 앞서 12월에 같은 병원에서 대장내시경도 하고 용종을 10개나 떼어냈는데, 그때는 암이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화가 났지만, 병원을 원망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살고 싶어 어렵게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또 너무 늦게 와서 수술을 못 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는 약물치료밖에 없다고 해서 이때부터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당시 의사가 얼마 못 산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많이 울었어요. 마지막 희망을 걸고 간 곳인데 참담했죠. 체념하고 인생을 정리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말기암  이겨내고  제2의 인생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깐 그동안  하나님이 돌아오라고 신호도 보내고 암시도 하셨는데, 제가 무시하고 내 방법대로만 살았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너무 후회되었죠.”

2017년 김 장로는 심근경색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당시 앰뷸런스 타고 응급실에 실려 가 스텐트 시술을 받고 살아났다. 그는 그게 신호였다고 말했다. 

“그때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순종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내 방식대로 순종하고, 신앙생활 하면서 제대로 하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살았죠.”

모태신앙인 김 장로는 평생 일도 신앙도 성실했다. 공 예배에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도 다니고, 봉사와 섬김에도 앞장서며 남들 보기에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은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다 2019년 김형배 담임목사를 따라간 엠마우스영성훈련원에서 섬김과 응답받는 기도의 은혜를 체험한 후 그의 신앙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그는 2020년 뒤늦게 62세에 장로가 되었다. 장로가 되어서야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을 갖게 됐다고 했다. 사업을 할 때도 이전까지는 ‘나’ 중심이었지만, 이후 ‘하나님 중심’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제가 에이치빔 철골 구조물 설치 일을 전문으로 했는데, 정말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어요. 도저히 감당 못 할 것 같았던 몇십 억 큰 빚도 10년 넘게 걸렸지만 다 갚았죠. 근데 밤낮없이 일해도 그동안에는 남는 게 별로 없었는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니까 비교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장로가 된 후에 하나님께 먼저 묻고 행동하는 습관이 생겼다. 사업을 진행할 때도 계약부터 무조건 묻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 그러다보니 이전보다 훨씬 많은 수익이 돌아왔다. 그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한다는 게 이거구나! 그제야 제대로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사실 김 장로는 그동안 오랜 세월 빚더미 속에 파묻혀 있었다. 과거 한보 사태의 여파로 당진제철소가 부도 처리되면서 수백 개 기업이 줄도산할 때 김 장로의 사업도 부도가 났다. 당시 돈으로 수십 억 원 빚더미에 앉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채권자들에게 끝까지 빚을 갚겠다고 약속했고, 최근까지 꾸준히 상환해 모든 빚을 청산했다.
김 장로는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 것 다들 아는데 도저히 못 갚는다고 파산 선언하고 나자빠질 수 없었다. 어떻게든 책임지고 싶었다. 오래 걸렸지만 지난해 마지막 빚까지 모두 갚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끝맺음 아니라 새로운 시작
결코 쉽지 않았던 인생길을 걸어온 그는 이제는 장로도 되고, 오랜 세월 마음을 짓누르던 빚도 다 청산했으니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말기 암이 찾아온 것이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느냐 물으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처음엔 잘 몰랐지만, 나중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태신앙이지만 진짜 기도의 응답과 성령의 임재와 가슴 벅찬 은혜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저를 일깨우시려 시련을 주신 게 아닌가 생각해요.”
실제로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한 김 장로는 비로소 가까이 하나님을 만났다. 2주에 한 번 2박 3일씩 약물치료를 받는데, 1차 항암치료로 입원했을 때부터 회개가 시작됐다.

“하나님이 저를 붙잡고 회개를 시키는데 내가 모르는 것까지 회개를 시키시더라고요. 병실 전체에 암 환자들만 있는데, 자고 나면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말 견디기 힘든 그 상황에서 기도의 끈을 붙들고 주의 인도하심만 따라갔더니 지금 이렇게 새 신앙과 건강을 얻게 되었어요,”

암 진단 이후 김 장로와 부인 전병례 권사는 ‘기도’의 참 맛을 보게 됐다고 한다. 이전에 모르던 깊이 있는 기도, 응답받는 기도의 은혜를 제대로 체험해 ‘기도의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19차 항암치료까지 마친 상태다. 수술도 할 수 없었던 심각했던 암은 현재는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11차 항암치료를 마친 후에 검사하니까 암세포가 다 없어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12차 치료 끝나고 교회에서 중보기도하는 환자 명단에서 이름도 빼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완치’ 판정이 나온 건 아니지만 그는 “하나님이 완전히 치료해 주셨다”고 고백한다. 

김송현  장로는  매주  주일마다  주차요원으로 봉사한다.

보너스 인생, 모두 주님의 것
김송현 장로는 “저는 지금 하나님이 서비스로 주신 인생을 사는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사나 죽으나 제 인생은 이제 하나님의 것”이라며 “그래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려고 한다.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으로 김 장로는 매주 금요일 서산교회 금요전도대로 활약하며 거리로 나가서 적극적으로 전도한다. “성령님께 다 맡기고 내 입술과 발길을 인도해달라고 기도하면 담대함을 주신다”는 그는 누구를 만나든 “예수 믿으세요”하고 용감하게 전도지를 내민다. 성령님이 다음 일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으로 담대히 전도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주일에는 주차관리 요원으로 봉사하고, 교회 국내선교위원장도 맡고 있다. 그의 영성훈련에 큰 영향을 끼친 엠마우스영성훈련원에 다른 성도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차량 운행도 맡아 섬기고 있다. 또 주특기를 살려 어렵고 작은교회 예배당과 사택 등을 고치고 수리하는 봉사에도 앞장서고 있다.

김송현 장로는 “제 목숨은 하나님의 것이니 오직 주님만 위해 살고 싶다. 남은 인생 담임목사님 목회에 도움이 되고, 영혼 구원에 보탬이 되는 일에 초점을 맞춰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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