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無心川) 총살 현장

故 이용신 목사(서호교회 원로)
故 이용신 목사(서호교회 원로)

 

이용신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나는 이제 죽으러 간다. 어머니가 가엾다.’ 머리를 풀고 우시는 어머니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환상이 펼쳐진다. 

“어머니, 비키세요. 불효자식은 진리를 위해 살기 때문에 이 짓밖에 다른 짓을 하지 못합니다. 어머니, 예수를 잘 믿고 나의 뒤를 따라오시오. 불효자식은 먼저 갑니다.” 이렇게 눈물로 고별하며 맨발로 서문교회 앞을 지나간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찬송이 나온다. 이제 몇 분 후에는 저 천국에 가 있을 것을 생각하니 한없이 기뻤다. 내 찬송 소리를 듣고 모두 “하나님!” 하며 부르짖는다. 임사호천(臨死呼天)이라더니 누구나 하나님을 부르는구나! 그러나 무슨 효과가 있을까? “큰 죄인 복 받아 빌 길을 얻었네…” 찬송 부를 때 “어떤 놈이 떠들어!” 하며 호위병의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무심천 풀밭에 4~5줄로 앉혔다. 구식 소련 총으로 덜컥 탕, 탕, 탕! 마구 쏘아댄다. 

이때 그는 분노에 차 있었다. “사람을 재판도 않고 사형에 처하다니, 이 악마들, 너희들을 모두 고발하여 벼락을 맞게 하리라…” 이렇게 독이 오르기 시작할 때, 아니다 내가 왜 이 최후 가장 엄숙한 순간에 동포를 저주하랴, 저들 배후에는 공산주의가 있고 그 뒤에는 악마가 있다. 저들은 가련한 내 동포들이다. 

이렇게 생각을 고친 그는 공산당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가정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그리고 온 인류를 위하여 기도하고 “내 영혼을 받으소서!” 최후의 기도를 하였다.

  총알이 머리 위로 지나가느라고 화약 냄새가 났다. 옆 사람이 맞아 비틀거리며 넘어진다. 앞에 있는 사람도 맞아 쓰러진 후 일어섰다가 내 머리 위로 쓰러졌다. 옆 사람은 어디를 맞았는지 그의 피가 이 집사 등 위에 쭉쭉 쏟아진다. 이렇게 하다가 몇 분 후에 총성이 멎으며 한 사람 한 사람씩 끌어다가 묻는다. 

그의 차례가 왔다. 그의 몸을 질질 끌고 가더니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마구 친다. 눈에서 번쩍번쩍 불이 일어난다. 그는 큰 구덩이에 던져졌다. 그리고 송장 하나를 그의 위에 포개놓았다.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함께 묻힌 사람이 욱하고 토하면 피가 그의 얼굴에 왈칵왈칵 쏟아졌다. 그때 총대로 이 집사의 다리를 마구 쳤다. 그리고 떼를 덮는다. 아직 그는 총을 맞지 않았으므로 그냥 죽게 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숨이 가빠지더니. 마침내 죽음의 장막을 헤치고 그의 영혼이 저세상에 가게 되었다. 이제는 숨이 가쁘지 않다. 웬일인지 한없이 기쁘고 즐겁다. 나무 들꽃 돌 삼라만상이 기쁨이 충만해 방글방글 웃음 띤 모습을 보았다. 큰 태양처럼 밝은 빛 가운데서 오색찬란하게 꾸며진 황홀한 홀을 보았다. 그 홀에 들어가 주님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 참, 인간들이 이렇게 좋은 천국이 있는 데도 없다고 믿지를 않으니 안타깝다. 이제라도 당장 이 사실을 증언하고 싶다…” 하면서 외치고 있을 때, 그의 영혼이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정신이 회복되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놈들이 급히 도주하느라고 어설프게 무덤을 만들고 엉성하게 뗏장을 덮어 그 틈새로 공기가 솔솔 들어와서 호흡이 통하게 되었다. 공기의 맛이 이렇게 달고 귀한 것을 그때 처음으로 체험했다. 

그의 옆에 죽지 않고 함께 묻혀있던 사람이 입으로 결박을 풀어줬다. 이때 총살된 사람들의 피가 얼마나 많이 그의 입으로 넘어갔는지 그 피의 비린 맛과 악취로 숨이 막힐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고 역겨웠다. 이 집사는 뗏장을 헤치고 나와서 아직 죽지 않은 몇 사람을 끌어낸 후에, 그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죽음에서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격하여 주께 헌신하게 되었다. <계속>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