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고난이 계속해서 지속되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실까?”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의심은 “하나님이 계시나?”하는 하나님 실존에 관한 문제에 이르게 하여 결국에는 우리를 실의와 좌절에 빠지게 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아갈 때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삶은 수월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캄캄한 인생의 밤을 지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창세기 19장에는 소돔과 고모라성의 타락을 보고 심판하기로 작정한 천사들이 롯과 그의 가족에게 일어나 그 성에서 도망가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성은 곧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심판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롯은 산에까지 갈 수 없으니 한 성읍으로 도망가겠다고 하며 시간을 지체합니다. 그러자 천사는 그의 청을 받아들여 그곳으로 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천사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창 19:22)고 말입니다.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로 우칼 라아소트 다바르(NIV, I cannot do anyting)’로서 국어 번역은 매끄럽게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단어가 마음에 걸렸는데, 국어성경에서 ‘~할 수 없노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우칼’ 즉 ‘야콜’이라는 용어였습니다. 이 말은 국어의 번역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로써, 사실 하나님께는 매우 불경건한 인상을 주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은 전능 즉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로 야콜’ ‘~할 수 없다니요!’ 하나님께서 그 어떤 것도 행할 수 없다구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2021년 3월 17일 AP 통신과 미 ABC 뉴스에서 ‘위대한 아버지 하늘나라로’라는 기사와 함께 어느 노인의 사망 소식을 전했습니다. 탯줄에 목이 감기는 사고로 인해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서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난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했으나 컴퓨터로 “뛰고 싶다”는 의사를 아버지에게 전함으로서 중증 장애인 아들 릭을 침대에 고정시켜 마라톤을 하였던 ‘딕 호잇’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그는 아들을 위해 60회 이상의 마라톤 완주를 하였고 철인3종 경기도 이루었던 아버지였습니다. 마라톤을 완주한 후 아들 릭은 “아버지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어요”라는 말을 전함으로써 전 미국인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답변은 온 미국인에게 형용할 수 없는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습니다. “네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하지 않았단다”라고 말입니다. 

부자 간의 사랑과 신뢰는 미국인들에게 큰 자부심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이시지만 한 가지 못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을 중단하시는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멸망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지 못하시고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우리를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하신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멸망 가운데 내버려두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견딜 수 없는 목회적 상황과 억울함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시는 사랑하는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겹쳐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 가운데 힘겨워 하시는 목회자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만사 우연히 돌아가는 것 같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도저히 멈추실 수 없는 하나님 손 안에 세상이 있습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안에서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깊은 밤을 지나고 있는 이들이여! 새벽의 여명은 반드시 밝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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