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 헌신으로 성장한 한국교회
그에 합당한 개방성과 기독교정신 유지해야 

우리 사회 여러 부분에서 관용의 정신이 쇠퇴하고 있다. 약자를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사례가 많고, 장애우들의 지하철 시위 방식이 못마땅하다고 해서 국제적인 도시 서울시가 공식적으로 그들에게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면 산업 현장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현장에서는 근로조건 위반, 성희롱, 폭언, 괴롭힘, 산업재해, 임금체불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별이 일상화되고 있다. 

나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관용을 베풀고, 약한 사람을 보호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상당한 인내력이 있어야 하고 느리거나 더딘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편한 것만 추구하고는 살 수는 없다. 서로 기대고 보호해주며 살아야 한다. 약자를 얼마나 잘 보호하는가는 그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의 척도가 된다. 

한국교회에서도 관용의 모습이 사라진 부분이 많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상당수의 교단에서 타국 시민권자(외국인)가 우리나라 교회의 담임목사(청빙 및 교회개척)가 되는 길을 막아놓은 것도 그런 불관용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한국이 외국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기독교 강국이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가 세계교회로부터 빚진 사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에 합당한 개방성과 성숙한 기독교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 교단의 신학생들도 갈 곳이 없다고, 우리 목회자들도 어렵다고 외국인 목사가 설 땅을 기술적으로 제한하는 사회의 신학은 꽃피기 어렵다. 기독교는 열방을 배제하는 폐쇄적인 울타리 내에서 나누는 종교가 아니다. 영국 잉글랜드 지역과 웨일즈 지역의 장로교파와 회중파의 연합교단인 영국연합개혁교회(United Reformed Church·URC)는 소속 교회에서 활동하는 목사 중 50% 이상이 영국이 아닌 곳에서 신학 수업을 받고 목사안수를 받은 외국인이라고 한다.(국민일보 1월 11일자 30면)

우리 사회의 차별은 전국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신체·정신적으로, 권력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차별당하는 사례가 많다. 흔히들 우리의 경제력과 문화 수준이 상승해 차별의 정도가 점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요즘에는 집권당의 핵심 정치지도자가 정치 지향점이 다른 사람들을 ‘종북주사파’라고 하거나 맘에 안 드는 노동운동 세력을 ‘북핵위협과 마찬가지’라고 공공연하게 발언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에 대한 배제가 노골적이다. 우리사회 노조운동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동의하는 것이지만, 핵심 정치권에서 이렇게 언급하면 갈등을 풀 길이 막혀버린다. 경제적 문화적 여유와 별 관련성이 없다. 차별은 그냥 싫어하는 일종의 편견이다. 

세계 여러 나라 흥망성쇠의 역사를 보면 국가 부흥의 정신은 국가 탄생 200년 사이에 확립되는 공통점이 있다. 1932년 건국한 조선은 세종~성종 집권기(1418~1495)에 정점을 찍은 이후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1636년에 건국한 청나라는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3대의 태평성대(1661~1796)를 기록한 후 쇠퇴하기 시작하다가 1840년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의 패배로 세계중심이었던 중국의 재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수렁에 빠졌다. 이유는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한 폐쇄성에 있다. 1776년에 건국한 미국 역시 국가의 찬란한 정신을 도출해낸 기간은 200년이었다. 2000년대 등장한 네오콘의 과도한 탐욕으로 인해 지금은 미국의 쇠퇴를 논하는 시각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한때 일본이 미국의 파워를 능가할 것으로 보기도 했으나 과거사 부인과 억지 등의 극심한 폐쇄성으로 인해 지금은 일본이 세계적인 리더십을 가진 나라로 성장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1948년 건국한 대한민국은 아직 신생 공화국이다. 남북통일과 열강의 협력 등 이룩해야 하고 국제사회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나라다. 관용이 사라지고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온다. 지금은 닫을 때가 아니다. 더 인내해야 하고, 못마땅해 보이는 것 아량을 베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정신을 키워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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