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포로가 되어 감방에서 발견한 성경

6월 25일 새벽 4시! 고막을 찢을 듯이 요란한 포성과 함께 돌격명령이 떨어졌다. 그는 6.25전쟁의 한 가운데서 인민군으로 임진강 상류 구화리(九化里) 전선에 투입된 것이다. 부대는 38선을 넘어 사흘을 밀고 내려와 곧장 서울로 진격하여 서대문형무소에 주둔했다. 고향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는 형무소 뒤에 있는 외삼촌 집을 기억하고 위생병 가방을 지고 슬그머니 부대를 빠져나왔다. 꿈에도 그리던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뵈올 생각에 가슴이 뛰었으나 그 기대는 한낱 꿈에 불과했다. 인민군 경비병의 검문을 받아 다시 붙잡힌 그는 즉결총살 감이었으나 어느 장로의 아들인 인민군 장교의 보증으로 가까스로 총살은 면하고 서대문형무소 16호 감방에 갇혔다.

지겹도록 해왔던 수용소 생활이라, 더욱이 전시 중에 감옥에 갇혀있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전영규는 그 감방 안 변기 곁에서 너덜너덜 헤어진 성경책을 발견했다.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불안함과 초조함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성경책을 조심스럽게 넘겼다.

붉은 선으로 굵게 그은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그는 처음으로 삶과 죽음,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4일 동안 성경을 읽었다.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그는 최선의 방법은 오직 기도뿐이라는 것을 터득했다.

나흘 째 되는 날, 그는 원대복귀가 되었고 승승장구하는 부대를 따라 이천, 장호원, 충주를 거쳐 대구 근처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인민군은 패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유엔군의 도움으로 국군이 점차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영규가 소속한 부대는 대구 팔공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최후의 전면공격을 시도했지만 참담한 패배를 했다. 그 인민군 부대는 진지를 버리고 후퇴했다. 그는 9월 중순, 며칠째 비가 내리는 와중에 16명의 패잔병 속에 섞여 소백산맥을 타고 북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일행이 충주 근처 남한강 상류 물이 얕은 쪽을 찾아 강을 건너 도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총소리가 울리더니 강을 건너던 일행이 픽픽 쓰러지는 게 아닌가. 그는 갈대숲을 몸을 숨겼다. 패잔병을 추격하던 국군의 총격이었다. 그는 갈대숲 웅덩이에서 생애 처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당신이 계시다면 제발 총알을 맞지 않게 해주십시오. 정말 부탁입니다.” 수십 분 간 총성이 끝나고 적막이 흘렀다. 일행 대부분은 사살되었으나 그는 살아난 것이다. 크게 감격하여 그는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국군의 확인사살이 진행되고 있는 데도 엎드려 기도만 했다. “하나님, 제발 발견되지 않게 해주세요.” 그는 밤이 될 때까지 꼼짝 않고 있다가 어둠이 깔리자 마을로 내려갔다. 한 촌부에게 국군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

국군은 잔뜩 긴장하고 심문을 하다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 국군들은 하나같이 하늘이 도운 사람이라고 하며 환영해줬다. 그리고 즉시 국군으로 입대신고를 하게 되었다. 그는 상의와 카빈총을 지급받았다. 그는 이렇게 인민군에서 국군 이등병이 되었다. 만주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4년여의 짧은 기간에 생사를 넘나들며 파란만장하게 살아왔다.

사과장수, 엿장수, 병원조수, 국부군에서 중공군, 중공군에서 인민군, 인민군에서 국군이 된 것이다. 그는 생존을 위해 군인이 되었지만 늘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가슴 졸여야 하는 군 생활이 이젠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군 생활에서 신앙이 싹튼 것은 크나큰 은총이요 선물이었다. 무수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하나님의 존재가 자신의 삶 속에 새롭게 각인되고 있었다.

전영규가 속한 부대는 인민군 패잔병이 도주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충주동북방 구학, 옥산, 학산 방면으로 향했다. 한밤중, 인민군 패잔병 출현이 예상되는 길목에 매복하고 있다가 기습작전을 하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조명탄이 터지고 공격이 개시되었다. 코앞에 있는 적과 육박전이 벌어졌다. 전영규는 육박전 와중에 개머리판에 머리를 얻어맞아 의식을 잃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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